조각낸 명작·소금 크기 명품… 예술 희롱하던 ‘이단아’가 미술관에
예술을 희롱하던 ‘이단아’들이 미술관에 전시를 열었다. 지난 17일 서울 대림미술관은 평일인데도 20~30대 관람객들이 북적였다. 코로나 사태로 휴관했던 대림미술관의 재개관 후 첫 전시 ‘MSCHF: NOTHING IS SACRED’로 젊은 층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것. 주말엔 20~30분씩 대기 행렬이 생길 정도로 MZ세대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MSCHF’(mischief·미스치프)는 2019년 결성된 미국 아티스트 그룹이다. 예술과 종교, 유명 브랜드, 각종 사회현상 등 ‘성역’을 두지 않는 풍자적인 작품으로 젊은 층에서 인지도가 높다. 미술관 전시는 처음. 반응은 여러 의미에서 뜨겁다. 전시장에는 “오” 하는 탄성과 끄덕거림과 함께, ‘피식’ 하는 웃음과 “킹받아”(열받아) 같은 목소리도 들렸다.
전시 중인 미스치프(MSCHF) 작품. 소금 한 톨보다 작은 '루이비통 가방(Microscopic Handbag)'. /대림미술관
이번 전시에선 지난 4년간 미스치프가 출시한 작품 중 100여 점을 속성으로 볼 수 있다. 예술가의 그림을 구입해 조각조각 잘라 여러 사람에게 되팔면 예술품의 가치는 어떻게 될까? 미스치프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그림을 100여 조각으로 자르고 남은 프레임까지 별도 작품으로 팔아 7배 이상 수익을 올렸다. 이 해체된 작품(‘Severed Spots’)이 전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앤디 워홀의 그림을 구입해 999장을 복제한 뒤 원본과 섞어버려 구분할 수 없게 한 작품도 바로 옆에 전시됐다. 실용 가치가 떨어지는 ‘미니백’ 열풍을 풍자한, 소금 한 톨보다 작은 초소형 ‘루이비통’ 가방도 있다. 현미경으로 봐야만 명품 로고가 보이고 물건을 넣을 수도 없지만 경매에서 8400만원에 팔렸다.
서울 대림미술관 '미스치프' 전시 공간. 왼쪽으로 데이미언 허스트의 그림을 100여 조각으로 나눈 'Severed Spots'와, 앤디 워홀의 그림 1장과 복제품 999장을 섞은 '어쩌면 앤디 워홀의 요정 진품(Possibly Real Copy of 'Fairies' by Andy Warhol)'이 보인다. /대림미술관
그 외에도 신발 밑창에 성수와 사람 피를 넣어 ‘예수님과 컬래버’시킨 나이키 운동화, 개가 짖지 못하게 전자 충격을 주는 개 목걸이를 풍자해 개가 짖으면 ‘욕설’로 바꿔주는 목걸이, 미국의 값비싼 의료비 청구서를 유화로 그린 뒤 청구된 의료비 가격만큼 붙여 판매한 작품 등 ‘악동’다운 작품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관람객이 직접 앉아보고, 눌러보고, 신어볼 수 있는 작품도 많아 젊은 관객들에게 더욱 인기다. 미스치프는 관람객(구매자)의 행위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프로젝트도 다수 진행해왔다. 차 한 대에 차키 5000개를 만들어 각각을 19달러에 팔았는데, 차는 서로 뺏고 뺏기며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공유 경제를 빗댄 작품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일명 ‘아톰 슈즈’로 화제가 된 3D 이미지 같은 느낌의 붉은색 부츠를 신어보는 코너에는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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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미스치프'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아톰 슈즈'로 유명한 '빅 레드 부츠(Big Red Boot)'를 신어보고 있다. /김민정 기자
30명으로 구성된 미스치프는 2주마다 작품을 홈페이지에 출시하는데 매번 품절 사태가 난다. 미스치프는 스스로를 “아티스트 그룹이자 비즈니스”라고 말한다. 지난 8일 간담회에서 가브리엘 웨일리 미스치프 CEO는 “창조에 대한 집착과도 같은 열정을 가지고 팀원들이 함께 다양한 관점을 녹여내며 적극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루카스 벤텔 CCO는 “거물이나 큰 브랜드 등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영역처럼 치부되지만, 이것을 건드려야 세상이 작동하는 시스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고 필요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했다. 작품 속 아이디어를 살펴보려면 무료 오디오 가이드는 필수인 전시. 내년 3월 말까지 열린다.
3D 이미지를 신은 것 같은 '빅 레드 부츠(Big Red Boot)'. /대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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