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2
LITERATURE
『최욱경작품전』(중앙일보사, 1989), p.18.
작품설명
1963년 미국으로 떠난 최욱경은 당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를 수용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모티프와 색채를 더해 독자적인 표현을 형성했다. 거친 붓 터치와 강렬한 색채를 통해 내적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한국 자연의 형태, 단청의 색채 등 전통적인 요소들을 탐색하며 작가 고유의 색채 추상 양식을 완성한 것이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1981년 귀국한 최욱경은 국내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한국의 산세와 바다, 섬에서 나타나는 곡선에 매료되어 작품에 차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작품에서는 부드러운 곡선의 율동감과 밝은 색채가 다른 시기 작품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1984년에 제작된 출품작 또한 이와 같은 시기에 전라남도 홍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인상을 표현한 작품으로 보인다. 굴곡을 이루는 능선의 부드럽고 역동적인 흐름에서는 운동감이 느껴지고, 붉은색과 푸른색, 노란색과 갈색 등의 대담한 색채들은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또한 짧고 격정적인 붓 터치와 부드럽고 굵은 터치가 절묘하게 공존하며 화면 전반에 에너지와 리듬감을 부여한다. 최욱경은 무한한 공간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추상이 아닌 ‘대상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현실에 기반한 추상을 추구했다.
실재하는 대상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작가만의 조형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각각의 시각 요소들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출품작에서도 짧은 수직의 선으로 채워진 화면 상단의 중첩된 형상은 섬 전체를 둘러싼 바위 산을 연상시키고, 능선의 외곽에 사용된 붉은 톤은 해 질 무렵에 섬 전체가 붉게 물드는 것이 특징인 홍도의 모습을 작가만의 시각 언어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그녀가 마주하였을 홍도의 풍경과 인상이 관람자에게도 전달되며, 진한 내적 울림을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