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우산, 1880~1886년, 캔버스 유채, 180x115cm,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더블린 휴레인 갤러리 소장.........런던과 더블린 오가는 ‘우산’

by 주해 2022. 12. 24.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2] 런던과 더블린 오가는 ‘우산’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2 런던과 더블린 오가는 우산

www.chosun.com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우산,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더블린 휴레인 갤러리 소장.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1841~1919)의 ‘우산’은 여러모로 애매한 그림이다. 오른쪽에 굴렁쇠를 든 어린 소녀와 언니, 이들의 엄마는 부드러운 파스텔 색조에 마치 깃털이 사뿐사뿐 휘날리듯 물감을 가볍게 칠한 전형적인 인상주의 양식으로 그려졌다. 반면 화면 왼쪽에 우산이 없이 나섰다가 비를 피해 걸음을 재촉하는 여인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채에 묵직한 옷의 질감이 느껴지는 차분하고도 견고한 붓질로 마무리했다.

르누아르는 1880년경, 이 그림을 그리다 에스파냐와 이탈리아를 두루 여행하면서 벨라스케스와 라파엘로 등 옛 거장의 작품으로부터 새삼스레 감동하고 돌아와 그림을 고쳐 그렸다. 이후 르누아르는 가볍고 예쁘장한 인상주의 화풍을 차츰 버리고 고전적인 양식으로 되돌아갔는데 ‘우산’이 바로 그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니 르누아르는 왼쪽 여인의 의상 또한 레이스와 프릴로 장식된 드레스를 그렸다가 지금처럼 밋밋한 옷으로 수정한 게 드러났다.

‘우산’은 아일랜드의 유명 컬렉터 휴 레인이 구입했다. 그는 사후 자신의 컬렉션을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 기증하겠노라고 유언했다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고향인 더블린에 유증한다고 했는데, 수정 사항에 서명하기 전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1915년 독일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뉴욕발 초호화 증기선 루지타니아호의 탑승객 중 하나였던 것. 오랜 타협 끝에 이 그림은 영국 런던과 아일랜드 더블린 사이를 오고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우산’이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모르나, 그림처럼 많은 이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걸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