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팀 버튼 단독 인터뷰… DDP서 10년 만의 전시회
‘가위손’ ‘유령신부’ ‘혹성탈출’ 세계적 영화감독 그림 500여점
“상상력 원천은 어릴적 외로움… 종이 위로 나 자신을 끌어내”
월드투어 첫 장소로 한국 선택 “광장시장 빈대떡, 최고의 성취”
시종일관 아이처럼 천진했던 팀 버튼이 진지한 얼굴로 본인의 그림들 앞에 섰다. 1997년작 유화 ‘푸른 여인과 와인’(가장 큰 그림)을 비롯해 괴상 발랄한 ‘소녀 시리즈’가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태경 기자
말 없는 아이에게 그림은 수화(手話)였다. “늘 고립된 인간이라고 느껴왔다. 내향적이고 말주변도 없었다. 그래서 그렸다. 종이 위에 내 안의 나를 끌어냈다.” 미국 출신 세계적 영화감독 팀 버튼(64)이 본지 단독 인터뷰에서 말했다. 몽환적이고 기괴한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인 그의 그림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9월 12일까지 전시된다. 어릴적 드로잉 노트부터 그림·조각·사진 등 50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10년 만에 한국을 찾은 그는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며 ‘나도 그리고 싶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왜 하필 그림이었나?
“물론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노래는 듣지 않는 게 좋을 거다(웃음). 원래 아이들이 낙서를 좋아하지 않나. 내가 좋아하는 걸 했고, 내 방식으로 창의성을 풀어냈다. 대부분 커가면서 그림의 감정을 잃어버린다. 잘 그리니까 그려야지, 이게 아니다. 좋으니까 그리는 것이다.”
-감독과 화가, 둘은 어떻게 다른가?
“영화는 팀으로, 그림은 혼자 한다. 하지만 궁극적인 정서는 동일하다. 나는 별개가 아니라 총합이기 때문이다. 내가 전달할 수 있는 건 결국 ‘연결’인 것 같다. 내 시작과 현재가 내 창작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팀 버튼은 “상상력의 원천은 유년 시절의 외로움”이라고 말했다. “외로움이 DNA처럼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도 했다. 고독한 소년은 스스로를 괴물과 동일시했다. 창백하고, 몸 전반에 바느질 자국이 있고, 이 세상에 없는 존재로 표현되는 자들. 그의 영화가 그렇듯 그림 속 ‘굴 소년’이나 ‘외계인’ ‘해적’ ‘녹색인간’ 등은 무섭다기보다 그 외향으로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팀 버튼 1996년~1998년작 '녹색 인간'. /정상혁 기자
2008년작 '스티치 보이'(Stitched Boy). /ⓒTim Burton
-누가 가장 당신과 닮았나?
“‘가위손’의 에드워드, ‘크리스마스 악몽’의 해골 주인공 잭 스켈링턴. 종잡을 수 없지만 가장 순수한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캐릭터는 내게서 나온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배트맨’은 이미 이미지가 구축돼 있었지만, 얘네들은 내 안에서 끄집어 낸 캐릭터다.”
-언제 어디서 그리나?
“작업실에서, 작은 바(Bar) 혹은 식당에서, 심지어 냅킨 위에도 그린다. 뭘 그려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둠 속에서 치르는 일종의 퍼스널 세러피(personal therapy)다.”
냅킨에 그린 수십 점의 군상(群像)을 비롯해, 전시장에는 몬스터 천지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이들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 대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린애들이 진짜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는가? 취한 채 돌아와 집을 박살내 버리는 가족이나 친척이다. 괴물이 아니라.” 엉망진창으로 커버린 진짜 괴물이 되지 말자고 그는 초지일관 웅변한다.
1990년 개봉한 영화 ‘가위손’(오른쪽)과 그해 그린 그림 ‘가위손’. /정상혁 기자·20세기폭스
1981년~1984년작 '무제'(로미오와 줄리엣). /ⓒTim Bur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