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아름다움을 남긴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 앞의 두 소녀, 1892년, 캔버스에 유채, 116 cm × 90 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피아노 학원이라면 이 그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인형처럼 고운 금발 소녀가 영 어려운 부분이 있는지 연주를 멈추고 악보를 되짚어 보고, 오렌지색 드레스의 소녀가 이런 그녀를 다정하게 에워쌌다. 방 안 커튼과 그녀들의 옷자락이 풍성한 머리카락과 함께 부드러운 선율을 따라 일렁이는 것 같다. 피아노 레슨이 늘 이렇게 온화하기만 하다면 누구라도 쉽게 음악가가 될 것이다.
사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1841~1919)가 조금이라도 풍족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음악가가 됐을 것이다. 가곡 ‘아베마리아’를 작곡한 샤를 구노가 성가대에서 노래하던 르누아르의 뛰어난 실력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당장 돈을 벌어야 했던 그는 열세 살에 음악과 학교를 모두 포기하고 도자기 공장에 취직했다. 틈틈이 그림을 배운 르누아르는 모네와 시슬리 등과 함께 인상주의를 개척하던 즈음에도 물감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에 시달렸다.
이 그림은 1891년, 동시대 미술가들을 위한 새로운 미술관을 세우고자 프랑스 정부가 의뢰한 것이다. 당시 르누아르는 제법 성공한 화가였지만, 정부의 심사가 얼마나 까다로울지 아는 그로서는 주제에서 구도까지 완벽한 작품이 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덕분에 이 그림을 원하는 수집가가 많아 비슷한 그림을 다섯 점 그렸다. 말년에 르누아르는 심한 관절염으로 붓을 쥘 수 없을 때에도 어떻게든 그림을 그렸다. 왜냐는 질문에 그는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고 했다. 르누아르는 1919년 오늘, 12월 3일에 아름다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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