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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근현대 미술

관객과 호흡하는 예술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 ..... 미술계 파워 1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by 주해 2024. 9. 6.

관객과 호흡하는 예술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 

 

관객과 호흡하는 예술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

관객과 호흡하는 예술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 미술계 파워 1위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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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서울 북촌 ‘푸투라 서울’ 옥상에서 한옥 마을을 배경으로 서 있다. 그는 스스로 다양한 분야의 교차점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명명하며 “양극화되고 분열된 세계 속에서 예술과 건축, 과학, 문학 등을 총망라하는 결합을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이제 예술 작품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바라봐야 한다. 관객과 피드백을 계속 주고받으면서 반응을 추출해 반영하며 진화하는 것이다.”

‘세계 미술계 파워 1위’ 큐레이터는 속사포 래퍼처럼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56) 런던 서펜타인 예술감독. 뛰어난 전시 기획으로 작가들을 발굴하고 트렌드 방향을 제시해온 그는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2009년과 2016년 두 차례나 1위에 올랐다.

‘프리즈 서울’ 주간을 맞아 방한한 그를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새로 생긴 예술 공간 ‘푸투라 서울’에서 만났다. 세계적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의 아시아 첫 개인전이 이곳에서 5일 개막했다. 올해 3월 그가 기획해 서펜타인에서 열렸던 전시의 한국판이다. 그는 “런던 전시를 단순히 옮겨온 게 아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예술은 AI가 끊임없이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작품 자체가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고, 계속해서 진화하는 양상을 띤다. 이번 전시도 런던보다 진화된 모습으로 서울에서 관객들을 만난다”며 “무엇보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측면에서 선구자였던 백남준의 도시에서 열려 기쁘다”고 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서울 북촌 '푸투라 서울'에서 개막한 레픽 아나돌 개인전 '대지의 메아리: 살아 있는 아카이브' 전시장에 서 있다. /박상훈 기자

-전시에 대해 설명해달라.

“AI 예술의 선구자인 레픽 아나돌이 개발한 ‘대규모 자연 모델’이 수억 개의 자연 이미지를 학습하고, 이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미지를 실시간 달리하며 보여준다. 작가와 팀원들이 아마존·아프리카·동남아 등 전 세계 16곳 우림에서 사진, 소리, 3D 스캔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물이다.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생태계 위기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주의를 환기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시다.”

-백남준부터 30대 작가까지 수많은 한국 작가들과 협업했다. 한국 미술계의 변화를 실감하나.

“가장 큰 변화는 미디어 아티스트 김아영, 비디오 게임을 소재로 작업하는 김희천 같은 신진 세대 작가들이다. 기술이 예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 눈에 띈다. 내가 2000년 ‘미디어시티 서울’에 큐레이터로 참여했을 때 백남준 선생이 ‘기술을 통해 이종(異種) 문화를 흡수하고 창조적 잠재력을 해방시키는 새로운 세대의 아티스트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현실로 이뤄졌다. 또 하나 서울에 올 때마다 새롭게 깨닫는 건 1960~70년대 활동했던 훌륭한 작가들의 존재다. 처음 한국을 방문했던 1990년대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1960~70년대 어떤 작가들이 선구적 역할을 했는지 알고 관심을 쏟게 됐다. 그 시대 미술사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환기하게 됐다는 점이 큰 변화다. 작년엔 실험 예술 1세대 작가인 이승택을 인터뷰했다. 큐레이터로서 내 역할은 미래지향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과거를 다시 돌아보는 것에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 올 때마다 선구자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고 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런던 서펜타인에서 열린 레픽 아나돌 전시가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선구자였던 백남준의 도시에서 열려 기쁘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전시 기획자가 영향력 있는 미술계 인사에 오른 비결이 뭘까.

“나를 추동하는 힘은 무한한 호기심이다. 미래, 혹은 이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흥미를 갖고 활동을 이어왔다. 내 활동이 예술에, 사회에 그리고 작가들에게 얼마나 유용할 수 있을까 하는 쓰임에 대해 늘 생각한다. 그들이 아직 구현하지 못한 꿈이 있다면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궁극적으로는 미술관 너머로, 사회로 예술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미션은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문학·음악·건축 등 다양한 정원을 함께 가꾸면서 그 모든 분야들의 교차점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다양한 문화권, 여러 나라와 지역, 작가들을 한데 모으고 교차시키는 것이다. 한국의 시, 음악, 건축에도 관심이 많다. 김혜순 시인을 가장 좋아한다.”

 

오브리스트는 과감하면서도 지속적인 실험으로 큐레이터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 미술관·갤러리를 벗어나 부엌, 엘리베이터, 호텔방, 비행기 내부 등 파격적인 전시 공간을 도입했고, 전 세계로 돌아다닐 수 있는 휴대용 미술관을 선보이기도 했다. 서울에서도 열렸던 ‘두 잇(Do it)’ 전시회는 지속 가능한 전시 형식을 보여줬다. 그는 “지금까지 169개 도시에서 진행됐고, 늘 어딘가에선 이 전시가 열리고 있다. 30년 넘게 이어진 전시”라며 “이렇게 예술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AI가 어떻게 유기체라는 미술을 만들어내는가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인데, 나는 1990년대부터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예술을 만들어왔다.”

-기획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작가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내가 하는 모든 프로젝트, 인스타그램, 전시는 모두 아티스트에게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큐레이터 초창기 시절에는 잠을 잘 시간도 부족했는데,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꿀 수 없기 때문에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금은 책 출판 작업을 위한 리서치 업무를 도와주는 야간 어시스턴트를 고용해서 24시간 제 작업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굉장히 많은 업무가 처리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미국 래퍼 키드 커드의 손글씨.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인스타그램

단색화가 하종현 손글씨.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9만명이다.

“내 인스타그램 계정은 손글씨 소멸에 저항하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를 만났을 때, 손 글씨가 점점 사라진다고 아쉬워한 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어떻게 손글씨를 부활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만나는 작가, 시인, 건축가들에게 종이를 주고 글을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의 손글씨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고 있다. 일종의 개념적인 온라인 전시회다. 12년째 이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손글씨에 흥미를 느끼며 동참하고 있다.”

-현대 미술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미래는 예측 불가능한 것이지만, 현재를 깊게 들여다보면 미래에 대한 추론을 할 수 있다. 디지털과 물리적인 것 사이에 이분법이 점점 사라지고 그 대신 혼합 현실이 등장하고 있다. 굉장히 물리적인 작품이지만 디지털적인 요소가 함께 들어있는 거다. 또 예전에 프리다 칼로나 자코메티는 몇 년에 한번씩 전시를 선보였지만 최근 들어 작가들은 더 많은 전시를 선보이면서 시간에서 해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많은 작가들이 점점 더 공공예술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을 어떻게 사회 안으로 끌어올 수 있을까 하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작가들은 더 많은 분야와 협업의 기회를 찾고 있다. 건축, 과학, 음악, 문학,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연결하는 다학제적인 시도가 중요해졌다. 물론 이 와중에도 전통적인 방식, 드로잉이라든지 회화에 대한 창작은 계속 이어질 거다. 새로운 형식의 등장이 전통적인 장르의 소멸을 뜻하는 게 아니다. 트렌드를 벗어나서, 또는 트렌드를 해체하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 한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스위스 취리히 출생으로 2006년부터 런던 서펜타인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영국 미술잡지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에 2009년과 2016년 1위에 올랐다. 전시 기획자 외에 탁월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큐레이팅의 역사’’큐레이터 되기’ 등이 번역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