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교 너머 파란 하늘, 태곳적 모습 간직한 원시림… 숨만 쉬어도 힐링되는 그곳에 마음을 두고 왔다
도시와 자연, 와인을 찾아
‘지속 가능’ 방식으로 떠난
샌프란시스코·소노마·나파 여행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미션 돌로레스 공원의 모습. 하늘과 잔디의 선명한 색감이 눈맛을 시원하게 한다. /이옥진 기자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멜로디를 들으면 누구라도 ‘아, 그 노래!’ 하고 단박에 알아차릴 스콧 매켄지의 ‘샌프란시스코’는 이 도시를 설렘과 낭만이 가득한 곳으로 그렸다. 재즈 거장 토니 베넷도 일찍이 이렇게 고백했다. “내 마음을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왔다”고.
이 아름다운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했다. 왜 예술가들이 이 도시를 찬미하는지, 왜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이곳을 꼽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일단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부드러운 바람이 황홀했다. 그 유명한 금문교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빽빽이 들어선 빌딩 숲이 그려낸 스카이라인 등 볼거리도 넘쳐났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람이 공존하는 모습,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모습에 반했다.
이번 여행이 조금 더 특별했던 이유는 ‘지속가능한 여행’을 주제로 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2007년 미국 최초로 일회용 비닐 봉지 사용을 금지했을 만큼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도시다. 소노마와 내파의 많은 와이너리들도 땅과 공기, 물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여행하는 동안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이 작은 수고로 샌프란시스코의 파란 하늘을 10년 후, 20년 후에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미션 돌로레스 공원에서 커피 한 잔
150년 가까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카. /이옥진 기자
다운타운에 짐을 풀고 향한 곳은 파웰역. 샌프란시스코 명물 케이블카(노면 전차)를 탈 수 있는 곳이어서다. 1873년 첫 운행을 시작한 케이블카는 150년 가까이 도시의 여러 언덕을 누벼왔다. 과거의 방식 그대로 운행하는 게 특징. 회차할 때는 땅에 심겨 있는 커다란 원형 나무판 위에 차량을 올린 뒤, 운전자가 내려 직접 판을 돌린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민 빨간색 케이블카에 몸을 싣자, ‘땡땡’ 하고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차량 난간에 서서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하니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짜릿했다. 가장 인기 있는 노선은 파웰-하이드 노선. 유니언스퀘어, 롬바드 스트리트, 피셔맨스 워프 등 유명 관광지를 갈 수 있다. 이 도시에서는 케이블카는 물론 버스도 매연을 내뿜지 않는다. 대부분 전기로 움직이는 친환경 버스이기 때문. 전기 자전거 대여소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종점인 피셔맨스 워프에서 내렸다. ‘어부들의 선창가’란 뜻을 가진 이곳은 원래 고기잡이배가 드나들던 곳인데, 수족관과 놀이시설,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면서 명소가 됐다. 가장 인기 많은 곳은 피어 39. 토실토실한 바다사자들이 일광욕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89년 지진 직후 바다사자들이 몰려와 자리를 잡았는데, 겨울에는 개체 수가 900마리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피어 39에서는 알카트라즈섬도 볼 수 있다. ‘악마의 섬’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알카트라즈는 1963년까지 흉악범을 가두는 감옥으로 운영된 곳. 영화 ‘더록’의 배경이기도 한 이곳은 지금은 관광 명소다. 피셔맨스 워프에 있는 레스토랑 그린스는 샌프란시스코 채식 식당의 원조다. 지역 농부들이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재배하는 채소들을 재료로 방울 양배추 피자, 구운 당근 파스타, 바삭바삭한 김치전 등 다채로운 메뉴를 선보인다. 클램차우더(조개 수프)로 유명한 부딘베이커리, 세계 3대 초콜릿 중 하나라는 기라델리 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기라델리 스퀘어도 가깝다.
피어 39에 있는 화려한 회전목마. 옆 무대에서는 서커스, 마술 등 쇼가 진행된다. /이옥진 기자
현지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미션 돌로레스 공원에서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잔디밭을 보고 있자니 눈맛이 시원했다. 공놀이하는 아이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노부부, 책을 읽는 청년…. 한동안 넋을 놓고 이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봤다. 공원 주변에는 타르틴 베이커리와 리추얼 커피가 있다. 미국 최고의 베이커리로 극찬받은 타르틴 베이커리는 유기농 밀가루와 설탕, 지역 농가의 달걀로만 빵을 만든다. 크루아상과 바나나 타르트가 특히 유명하다. 리추얼 커피는 여러 도시에 퍼져 있는 블루보틀, 필즈와는 달리 샌프란시스코와 내파에만 지점이 있기 때문에 들러볼 만하다. 신선하고도 진한 풍미가 일품이다.
1906년 대지진 때 붕괴됐다가 다시 세워진 샌프란시스코 시청사는 시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웅장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모델로 지어진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결혼식 장소로 인기다. 배우 매릴린 먼로와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도 이곳에서 식을 올렸다. 시청 맞은편에는 아시안 아트 뮤지엄이 있는데, 이곳의 다른 이름은 ‘이종문 아시아 예술문화 센터’다. 종근당 창업주 이종근 회장의 동생인 이종문 암벡스 회장의 이름을 딴 것. 실리콘밸리 벤처 신화를 이룬 1세대 이민자인 그는 1994년 아시안 아트 뮤지엄이 재정 악화로 문을 닫게 되자 1500만달러를 기부해 박물관을 살려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도 반가운 이름을 찾아 볼 수 있다. 피카소, 마티스, 로스코 등 세계적 작가의 작품과 함께, 김환기의 파란색 전면점화 ‘26-I-70′(1970년)이 전시돼 있다.
◇진짜 자연 느끼려면 레드우드숲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수교로 꼽히는 금문교에 석양이 지고 있다. /캘리포니아관광청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를 단 하나만 꼽자면? 단연 금문교다. 골든게이트 해협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 베이와 마린카운티를 연결하는 이 아름다운 주황색 현수교는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한다. 당초 거센 조류와 복잡한 지형에 건설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됐지만, 1933년 짓기 시작해 1937년 완공됐다. 미국토목학회는 ‘현대 토목건축물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이 다리를 선정했다. 길이 2737m 폭 27m인 금문교는 자전거와 도보로도 오갈 수 있다. 현지인들로부터 금문교를 가장 가까이에서 조망할 수 있는 뷰 포인트로 추천받은 배터리 스펜서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를 지키던 군사 요새였던 이곳은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됐다. 가파른 흙길을 10여 분 정도 오르면 어느 순간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터널 톱스 내 친환경 놀이터를 즐기는 어린이들의 모습. /이옥진 기자
금문교 남쪽의 터널 톱스 공원으로 향했다. 지난여름 문을 연 이곳은 지금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핫한 곳. 고속도로 건설 잔해가 뒹구는 버려진 공간이었던 터널 꼭대기를 지역 주민들이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습지를 복원해 본래 지리적 특성이 반영된 이 공원 안에는 친환경적으로 조성된 놀이터가 있다.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미끄럼틀, 그네 등을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피크닉 광장에서는 금문교를 바라보며 바비큐도 즐길 수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샌프란시스코의 허파, 골든 게이트 공원이 있다. 동서로 5km, 남북으로 1.6km의 직사각형 공원인 골든 게이트 공원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보다 면적이 20% 더 크다. 이곳에는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 드 영 박물관, 일본 차 정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골든 게이트 공원에서 일행들과 ‘플로깅(plogging·조깅하며 쓰레기 줍는 활동)’을 했다.
태곳적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뮤어 우즈 국립공원에서는 가만히 숨만 쉬어도 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이옥진 기자
진짜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태고의 원시림을 보존하고 있는 뮤어 우즈 국립공원을 추천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이곳엔 세계에서 가장 키 큰 나무인 레드우드가 산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의 수령은 약 1200년. 1800년대 학살 수준의 벌목으로 레드우드가 멸종 위기에 몰리자, 1905년 캘리포니아 사업가인 켄트 부부는 이 숲을 사서 연방정부에 기증했다. 켄트 부부가 공원 이름에 ‘숲의 성자’라 불리는 환경운동가 존 뮤어의 이름을 넣기를 바라 ‘뮤어 우즈 국립공원’이 됐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듯한 풍경을 갖고 있는 이곳은 영화 ‘혹성탈출’의 배경이 됐다. 키 100m가 넘는 레드우드는 어떻게 몸을 지탱하는 걸까. 비결은 일가를 이뤄 사는 데 있다. 레드우드는 이웃한 나무들과 뿌리를 촘촘히 얽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한다. 아침에 방문하면 나무들이 뿜는 신선한 향을 맡으며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1시간 정도면 주요 탐방로를 둘러볼 수 있다. 숲속이라 기온이 낮으니 외투는 필수다.
◇소노마·내파밸리에서 만난 ‘지속가능 와이너리’
소노마 바샬라뮤 에스테이트 와이너리에서 수확한 포도들. /바샬라뮤 에스테이트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차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소노마 밸리에 닿는다. 캘리포니아 와인의 원조 산지인 소노마에는 400여 와이너리가 넓게 분포돼 있는데, 피노 누아, 샤도네이, 카베르네 소비뇽, 진판델 등 60여 종의 포도가 재배되고 있다. 90% 이상의 와이너리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등 친환경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든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살러뮤 에스테이트 와이너리. 와인을 마시면서 1820년대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포도밭의 풍경을 음미할 수 있다. 바살러뮤의 와인 메이커 케빈 홀트는 “(와인을 만들 때) 인간의 개입이 없으면 포도는 (발효가 돼) 식초가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개입은 필요하다”면서도 “와인 메이커로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가능한 한 비켜서서 포도와 이 포도가 자라난 땅이 가진 본연의 특성을 잘 나타내는 와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소노마 바샬라뮤 와이너리의 대표 와인들. 로제는 진판델, 레드는 카버르네 쇼비뇽이다. /이옥진 기자
글렌 엘렌에 있는 애버츠 패시지는 6대째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번추 가문의 첫 여성 양조업자인 케이티가 2020년 문을 연 곳. 미국의 대표적인 유기농 인증 기관 CCOF의 인증을 받았다.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했던 땅을 복원하기 위해 3년간 휴지기를 둔 뒤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의 지속가능성 디렉터 메건 로버츠는 “펌프를 비롯한 모든 시설은 태양열 에너지로 가동되고, 포도 재배에는 빗물과 재생한 폐수가 사용된다”고 소개했다. 애버츠 페시지에서는 와인을 마시며 포도밭 산책이 가능하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셔플보드’ 게임 코트도 제공한다.
소노마에서 차로 30분 달리면 내파밸리가 나온다. 소노마의 와이너리가 소박한 느낌이라면, 내파는 보다 화려하고 여유롭다. 포도가 자라기에 너무나 훌륭한 기후와 토양을 갖춰 ‘포도를 위한 천국’이라 불리는 곳. 소노마와 비슷한 품종의 포도가 재배되는데, 같은 포도라도 풍미가 약간 다르다. 샤도네이로 비교하자면 소노마는 비교적 가볍고 산뜻한 편, 내파는 깊고 풍부한 편이라고 한다. ‘자연 보존’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다는 세인트 슈페리 에스테이트에 도착하자 검은색 드레스를 빼입은 와이너리 주인 에마 스웨인이 일행을 맞았다. 아침 식사를 하라며 와인 잔을 건넨 그녀를 따라 와이너리 투어를 시작했다. 바로 옆 포도밭에서 수확된 포도들이 컨베이어 벨트로 옮겨져 사람의 손과 기계로 선별되고 있었다. 양조장 안으로 들어가 직접 포도를 으깨봤다. 즙과 과육이 된 포도는 오크, 스테인리스 스틸, 콘크리트로 된 양조 탱크로 옮겨진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에는 ‘내파 그린’ 인증이 붙어 있다. 내파 그린은 에너지 절약 등 120개가 넘는 지속가능성 관련 기준을 충족해야만 받을 수 있다.
내파밸리의 트레스 사보레스 와이너리에서 사람들이 자연을 음미하며 와인을 즐기고 있다. /이옥진 기자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함께 와인을 음미하고 싶다면 역시 ‘내파 그린’ 인증을 받은 트레스 사보레스 와이너리를 추천한다. 와인 메이커인 줄리 존슨의 반려견들과 염소, 양, 닭 등 다양한 동물들이 반겨주는 곳이다. 커다란 나무 아래 포도밭을 바라보며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과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선 종이컵, 페트병 등 일회용기를 갖고 오는 것을 금지한다. ‘트레스 사보레스’는 세 가지 맛이란 뜻. 존슨은 “모든 와인 잔에는 세 가지 맛이 담겨 있다”며 “바로 포도와 테루아(terroir·토양, 강수량, 일조량 등 자연 환경 전반), 함께 마시는 좋은 이들이 만들어낸 맛”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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