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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김환기 작품관

김환기(1913 ~ 1974) : 무제 : oil on canvas : 170.7x129.5cm : 1964-1965

by 주해 2023. 6. 27.

LITERATURE
『김환기 25주기 추모전 김환기 서울 · 뉴욕시대』(갤러리현대, 1999), p.8.
『김환기』(마로니에북스, 2012), p.183, p.356.
 
EXHIBITED
갤러리현대(서울), 《한국현대미술의 거장-김환기》: 2012.1.6-2.26.
 
작품 설명
출품작은 1964년부터 1965년까지 제작된 작품으로, 이 시기는 김환기가 뉴욕으로 이주하며 화풍의 변화를 보이던 때로 뉴욕 시기 초기에 해당한다. 작품의 좌측 하단에는 서명과 함께 ‘64-65’로 제작 연도를 표기했는데, 작품의 큰 규모로 보아 김환기가 1964년 10월 셔면 스퀘어 스튜디오ShirmanSquare Studio에 입주한 이후에 그리기 시작해 1965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출품작이 제작되기 한 해 전인 1963년은 김환기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때이다. 그는 일본 유학과 파리 체류, 그리고 뉴욕에 정착하면서 세계적인 흐름을 포괄적으로 경험해왔는데, 일본 유학 시절에는 일본 문화를 통해 모더니즘을 수용하게 되고 파리 체류 시기에는 오히려 이국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리고 1963년에는 한국인 대표로 참여하게 된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 산월을 모티프로 한 <섬의 달밤>, <여름 달밤>, <운월> 총 3점을 출품했다. 출품작은 동양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국적 미를 표현하는데 집중돼 있는데, 그 이유는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당시 김환기의 예술의 주체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김환기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국 제적인 흐름이 미국 추상표현주의 특유의 거대 화폭과 완전 추상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이에 영향을 받아 그의 작품의 규모는 급격하게 커지게 된다. 화면의 확장으로 인해 무한성과 숭고함이 느껴지는 화폭을 구축하기 시작하는데, 출품작 역 시 세로가 1미터 70센티에 이르는 대형 캔버스 작업이다.

작품의 규모와 함께 화면에 나타나는 이미지 역시 달라지게 된다. 앞으로의 작업에 대한 큰 고민을 가지고 1963년 10월에 뉴욕에 도착한 김환기는 빠르게 그릴 수 있는 과슈 작업을 통해 다양한 조형 실험을 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이전 작업에서 반복된 달항아리, 매화 가지, 나무, 산, 하천, 새 등 구체적인 형상의 모티프들은 점차 단순화된 형태로 바뀌어 갔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김환기가 처했던 상황과도 연관되는데, 그는 타국에서 언어의 장벽을 느끼며 보편적인 조형 언어를 통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작품에 함축해 전달하고자 했다. 이와 동시에 물감을 채색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파리 시기 작품에서 안료를 칠하고 다시 여러 번 올려 마치 부조와 같던 두터운 입체감을 만들었다면 이 시기부터는 캔버스 표면에 유화 물감을 얇게 칠해 올린 채색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화면의 질감은 보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만들어졌고 화폭에 남긴 순수한 점, 선, 면의 구성을 더욱 강조해서 보여줬다. 출품작 역시 전면 점화를 앞둔 시기의 작품으로 김환기가 추상 회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을 상징하던 형상들이 해체돼 반추상의 이미지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점, 선, 면의 조형요소뿐 아니라 산등성이를 연상시킬 수 있는 곡선의 형상이나 달을 떠올릴 수 있는 반원이 상단에 남아 있기도 하다. 특히 화면 가운데 검은색 곡선으로 그려진 기호와 같은 형상은 김환기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형태이다. 김환기의 고향 신안 안좌도 주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연결돼 있고 높지 않은 산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데, 이러한 자연의 이미지들은 김환기에게 자연스럽게 내재된 심상으로 자리했고 그의 화폭에서 다양하게 추상화된 형태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화면의 여백에는 조형적으로 남긴 굵고 짧으며 리듬감 있게 배치된 선과 점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화면 가운데로 이어지는 색점들은 일정한 띠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의도적으로 구성한 듯한 방향성을 보인다. 네모꼴 테두리에 둘러싸인 둥그스름한 점의 반복이나 울타리 모양으로 보이는 선의 병치들은 출품작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메아리1964>, <아침의 메아리 04-VIII-651965>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이는 이후 전면 점화에서 나열되는 점의 기본 모티프가 된다.

이번 출품작의 또 다른 특징은 김환기를 상징하는 푸른색으로 큰 화면을 가득 채웠다는 점이다. 김환기는 푸른색이 가장한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색채라고 생각했는데, 바다, 하늘, 백자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미감을 다양한 푸른색을 통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출품작을 보면 배경은 하나의 색으로 칠했지만 그 안에 그려진 조형요소들은 붉은색, 녹색이 섞인 푸른색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 안에서도 풍부한 색채를 표현하고 있다. 김환기는 작업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화면에 남기는 다양한 조형 요소들을 더욱 간결하게 하고자 했으며, 그가 모티프로 삼은 자연에 내재된 기운생동을 리듬감과 운율감이 느껴지는 곡선과 점의 반복을 통해 화폭에 담아냈다.
 
 
20230627 : S :  출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