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에 잠식된 그녀의 삶을 구원한 ‘동그라미’
2016년 홍콩에서 열린 구사마 야요이 둥근 문양 특별 전시회에서 야요이가 특유의 빨간 머리를 하고 자기 작품과 같은 문양의 옷을 입은 채 앉아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구사마 야요이(94)는 일본의 조각가 겸 설치 미술가이다. 노란 바탕에 까만 땡땡이 문양이 줄을 선 대형 호박 작품을 누구나 한 번쯤 봤지 싶다. 머리를 새빨갛게 물들인 모습을 보면, 이 나이 든 팝 여성을 잊을 수 없다. 그녀 자체가 작품이다.
야요이는 어렸을 때부터 일상 물건에 불이 들어간다는 착란과 여러 강박 증세를 보였다. 당시 이를 정신 질환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탓에, 어머니는 교육 부족이라며 야요이를 매질로 다스렸다. 그러다 미술 학교에 들어가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정신과 의사가 “집을 떠나라”고 권유했고, 야요이는 뉴욕으로 건너가 화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77년 일본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며 다양한 작품을 쏟아냈다.
그녀는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본 뒤, 눈에 남은 잔상이 온 집 안에 보이는 경험을 하면서 둥근 물방울 무늬 작업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것으로 전시회 티켓 1만 장이 몇 분 만에 매진되는 세계적인 인기 작가가 됐다.
그런데 야요이 작품처럼 둥근 문양이 즐비한 것을 보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환공포증(環恐怖症)이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 인구의 10여 %가 원형이 무수히 반복되거나, 비슷한 패턴이 빽빽이 밀집되어 있는 것을 보면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나해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독성을 가진 곤충이나 식물이 이와 비슷한 패턴이어서 잠재적 공포를 유발한다는 가설이 있다”며 “드물게는 환공포증 때문에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나해란 원장은 “반복된 원형은 끝이 없는 팽창이자 소멸이라는 점에서 가장 중독성 있는 도형”이라며 “몰입과 불안이 충돌하는 이중적 자극 때문에 야요이 작품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동그란 문양은 야요이 자신의 강박에 대한 힐링 작업이자, 정신 질환에서 얻은 영감이기도 했다. 그것을 보고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사람도 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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