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9 09:52:07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2/28/2018122800033.html
은은한 색채 가진 '아미타여래도' 中 유물이라 잘못 알려져 있었어요
해외 문물 적극 받아들인 고려…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 이뤘죠
고려시대 이전의 우리나라 문화재 중에서 돌이나 금속이 아닌, 나무로 만든 인물상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불에 타거나 썩어 버렸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1100년 전에 나무로 만들고 색을 칠한 인물상이 아주 드물게 보존돼 있답니다. 경남 합천 해인사의 '건칠 희랑대사 좌상'(보물 999호·사진1)이에요. 온화하게 웃는 표정과 세밀한 주름살, 옷의 문양까지 마치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생생합니다.
◇'사제(師弟) 상봉'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 희귀한 명품을 지금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어요.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 '대고려(大高麗),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에서 전시하고 있거든요. 희랑대사 좌상이 해인사를 떠난 건 이번이 1100년 만에 처음이랍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연꽃처럼 만든 받침대 위에 아무런 유물도 없이 조명으로 비춰 놓은 빈자리가 있어요. 누구의 자리일까요?
좌상의 주인공인 희랑대사는 통일신라 말기의 이름 높은 스님으로,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의 스승이었답니다. 희랑 대사가 있던 해인사는 큰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녔던 절이어서, 그가 누구 편을 드느냐에 따라 후삼국의 세력 판도가 달라질 수 있었어요. 결국 제자인 왕건 편을 들어 고려 개국과 통일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사진1 - 1100년 만에 해인사를 떠난 '희랑대사좌상'(보물 999호). 사진2 -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소장 '아미타여래도'는 중국 작품인 줄 알았는데 2012년 조사 결과 고려 불화로 밝혀졌어요. 사진3 - 연꽃과 봉황을 그려넣은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 사진4 - 현대적 미니멀리즘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 '청자 꽃잎모양 발'. 사진5 - 원나라 불상으로 알려졌던 고려의 '금동십일면천수관음보살좌상'.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 그찬란한도전'展
'대고려전'은 세계에 흩어진 고려의 대표 유물들을 모아 한자리에 전시하는 특별전이에요. 그래서 박물관에선 태조와 희랑대사, 즉 '스승과 제자 1100년 만의 만남'을 준비했어요. 북한 개성에서 출토된 왕건 동상을 해인사에 있는 희랑대사 좌상과 나란히 전시하자는 것이었지요. 왕건상은 이미 2006년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도 대여해 달라고 북한에 요청했는데, 안타깝게도 이달 초 전시를 개막할 때까지 북한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어요. 이 때문에 왕건상이 놓여야 할 스승인 희랑대사 옆자리는 '빈자리'로 남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왕건상이 오지 못했다고 해서 결코 이 전시가 볼만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대고려전'은 미국·영국·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 45개 기관에서 모인 고려 문화재 450여 점이 한자리에 나오는 특별전이거든요. 한마디로 '고(高)밀도 명품전'이자 1970년대 해외 여러 나라를 순방했던 '한국미술 5000년전' 이후 최대 규모의 우리 문화재 전시라고 할 수 있어요.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대고려전'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춘 전시"라고 했지요.
◇우리가 몰랐던 '세련되고 화려한 고려'
여러분은 혹시 '유현(幽玄)'이란 말을 아시나요? '알기 어려울 정도로 아취가 깊고 그윽하며 미묘하다'는 뜻이에요. 이게 무슨 말인지 실감하려면 '대고려전' 전시품 중 하나인 이탈리아 동양예술박물관 소장 '아미타여래도'〈사진2〉를 봐야 해요. 마치 달빛이 선계(仙界)에 투영된 듯 은은한 색채와 신비로운 미소가 경탄을 자아내는 작품이에요. 이탈리아에선 오래도록 중국 작품으로 잘못 알고 있었으나 2012년 한국 측의 조사 결과 고려불화임이 밝혀졌답니다.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낯선 고려'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경한 듯 가슴을 울리는 세련되고 화려한 문화재가 한둘이 아니에요. 오히려 처음부터 지나치게 '남북 교류 이벤트'에 매달리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 정도랍니다. 현존 유일의 고려시대 은제 주자(注子·주전자)인 보스턴박물관 소장 '은제 금도금 주자와 받침'〈사진3〉은 연꽃과 봉황을 표현한 정밀함과 화려함에서 고려인들을 다시 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 '청자 꽃잎모양 발(鉢·승려의 밥그릇)'〈사진4〉은 우아한 비색(翡色)이 현대적인 미니멀리즘과 기막히게 어우러졌지요. 영국 피츠윌리엄박물관 소장 '청자 주자와 받침'은 똑같이 생긴 제품을 집에서도 한번 써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지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으로 처음 공개되는 '금동십일면천수관음보살좌상'〈사진5〉은 "고려 불상 맞아?"라며 눈을 비비고 다시 보게 될 만큼 이국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답니다. 이국적인 자태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 불상이 고려시대에 수입된 원나라 불상이라고 생각했어요. 박물관 소장품이지만 수장고에 있었던 이유죠. 최신 연구 결과 고려 불상이 맞는다고 확인되면서 이번에 빛을 보게 됐어요.
◇국제적이고 개방적이었던 '세계 속 고려'
전시장은 많은 유물을 보여주면서도 공간의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는 특징을 지녔습니다. 불화, 목판, 청자, 경전, 불상, 금속공예, 나전칠기 같은 많은 장르의 유물을 '개경(開京)' '불교' '차(茶)' '기술과 디자인'이라는 네 가지 테마로 크게 나눠 보여주고 있지요. 하지만 같은 장르의 예술품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봐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고려는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풍토 속에서 해외 문물을 받아들여,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문화를 이룬 나라였어요.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중국 둔황 '수월관음도', 일본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같은 시대 다른 나라의 유물도 함께 전시해 놓았어요. 고려 예술이 세계적 흐름 속에서 어떻게 독창적인 특징을 갖춰 나갔는지 비교해 볼 수 있겠죠? 자칫 어느 작품이 다른 나라 것인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갈 수도 있으니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해요. 전시는 내년 3월 3일까지 계속되지만 '아미타팔대보살도' 등 일부 유물은 대여 기간이 짧아 올해 말, 내년 초에 전시가 끝나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가 보는 것이 좋을 거예요. 관람료는 성인 8000원, 8~25세 4000원, 7세 이하와 66세 이상은 무료. (02)2077-9000
'한국 미술 > 전시 . 탐방 . 아트페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랑미술제 2019 (코엑스 2019.2.20 ~ 2.24) (0) | 2022.11.17 |
---|---|
식민지서 지켜낸 우리의 국보들, 간송의 '대한콜랙숀' (0) | 2022.11.17 |
국제 갤러리 유영국 전시회 (2018.9.4 ~ 2018.10.7) (0) | 2022.11.15 |
서울 종로구 평창동 화정 박물관 (2018 . 05 . 19) (0) | 2022.11.13 |
예르미타시 박물관 展 (2018 . 4 ) - 국립중앙박물관 (0) | 2022.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