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4 21:41:5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04/2019010400124.html
식민지서 지켜낸 우리의 국보들, 간송의 '대한콜랙숀'
3·1운동 100주년 특별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서 3월까지
"1만4580원!"
1936년 11월 경성에서 열린 경매장, 미술품 수집가 간송 전형필(1906~1962)과 일본 무역상 야마나카 상회가 맞붙었다. 매물은 조선백자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이었다. 당시 경매가 열린 경성미술구락부는 합법적 유물 반출 창구였고, 간송은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격을 높였다. 500, 1000, 3000, 9000, 1만…. 조선 도자기가 2000원 넘게 팔린 적 없던 시절이었다. 간송이 "1만4580원"을 응찰했다.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이 압도적 경매 최고가 앞에서 결국 일본은 무릎을 꿇었다. 여염집 참기름병으로 쓰이던 이 백자는 훗날 국보 제294호로 지정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간송미술문화재단 특별전 '대한콜랙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3월까지 열린다. 문화 독립운동가로서의 간송이 식민지에서 지켜낸 조국의 예술과 열망을 조명하는 자리다. 남몰래 도쿄까지 가 구해온 고려청자, 친일파 송병준의 집 아궁이에서 불쏘시개로 사라질 뻔한 겸재 정선의 화첩 등 국보 6점, 보물 8점을 포함한 60여점이 공개된다. 고려청자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 위엄을 뽐낸다. 너무 비싸 조선총독부박물관도 손을 못 대던 이 청자를 간송이 거금 2만원에 냉큼 구매한 일화도 소개돼 있다. 한만호 실장은 "가장 암울한 시대에 지켜낸 것이기에 문화재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고 말했다.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법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30년부터 한국 미술품 수집을 시작해 1938년 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 ‘보화각’(간송미술관 전신)을 세웠다. 1962년 별세했고, 2014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보국(文化保國) 신념을 좇는 이른바 '히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전시를 구성해, 작품의 단순 진열을 탈피했다. 간송이 일본 주재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로부터 일괄 인수한 도자기 '갇스비 콜랙숀' 20점 중 12점도 볼거리다. 간송은 이 서양인이 언젠가 고국에 돌아가려 할 때 수집품을 처분하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여러 곳에 기별을 넣어뒀다. 1937년, 정세 불안을 예감한 개스비가 곧 일본을 떠나려 한다는 전갈을 받은 뒤 곧장 도쿄로 향했다. 흥정은 결렬의 연속이었고, 간송은 청자를 손에 넣기 위해 집안 대대로 내려온 충남 공주 일대 땅 1만 마지기를 팔아야 했다. 새끼 품은 어미 원숭이를 형상화한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제270호) 등이 이렇게 조국으로 왔고, 이 중 4점이 국보, 5점이 보물로 등록됐다. 당시 일화를 담은 '쫀·갇스비氏 이야기' 친필 원고도 전시돼 있다. 이를 읽고 청자를 찬찬히 살피면, 표면에 나 있는 실금이 푸른 핏줄처럼 보인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 첫 외부 전시였던 DDP와의 5년 협업을 마무리하는 전시다. 그간 시설 노후화 등을 이유로 휴관했던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이르면 올가을 다시 문을 연다. 간송의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신축 수장고가 내년쯤 준공되면 미술관 기능 대부분을 그쪽으로 옮긴 뒤 미술관 내부는 원래 모습으로 복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6년 추진된 대구 간송미술관 건립도 박차를 가한다. "올해 설계 예산이 나오고 2022~23년쯤 개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유학(儒學) 문화가 발달한 지역인 만큼 특색 있는 전시와 보존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수집가를 넘어 교육자로서의 간송도 재조명된다. 3·1운동의 중심에 있었으나 위태로웠던 민족사학 보성학교를 1940년 60만원을 들여 인수해 후학을 양성했다. 1946년 광복 직후 간송이 3·1절 졸업식날 학생들에게 읽어주려고 직접 쓴 '독립선언서' 필사본도 전시됐다.
간송이 지킨 보물이 눈앞에 있으나, 그가 보성 개교 55주년 기념사에서 밝힌 일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는 이제로부터 이루어야 할 너무도 많은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가 지녔던 영광스럽고 끈기 있는 노력보다도 한층 더 나라를 사랑하고 겨레를 위하여 힘껏 개척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이 산같이 쌓여 있다는 것을 명심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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