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니발레 카라치(Annibale Carracci·1560~1609)의 ‘콩 먹는 사람’은 16세기판 ‘먹방’이다. 우리 눈앞에 보란 듯이 펼친 식탁에는 삶은 콩 한 사발, 빵, 파, 채소 파이와 주전자를 차려뒀다. 농부 차림의 남자는 일단 빵을 떼어 먹으며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나무 수저에 콩을 퍼서 한입 가득 넣을 참이다. 수저에서 국물이 흐르는데 남자는 갑자기 입을 벌린 채 눈을 치켜뜨고 우리를 본다. 오늘날 먹방 진행자가 음식을 먹다 말고 실시간 댓글을 확인하는 모습과 어쩌면 이렇게 똑 닮았는지. 과연 이토록 리얼한 콩먹방의 시청자는 누구였을까.
사실 카라치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유명 화가 집안을 이끌던 거장으로, 주로 성당과 궁정으로부터 성화와 신화 주제의 벽화를 주문받았다. 그의 대표작은 파르네제 추기경의 저택, 로마 팔라초 파르네제의 천장에 그려 넣은 ‘신들의 사랑’이다. 장엄하고도 세련된 신들의 향연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3대 프레스코화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파르네제 추기경은 높은 지위와 안목에 비해 인품이 고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가 카라치에게 지불한 임금은 두고두고 화제가 될 정도로 박했고 그나마 밥값을 일일이 계산해 차액만 줬다. 그게 화병이 됐는지 카라치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쉰을 못 채우고 요절했다. 온 로마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장례는 성대했으며 그의 유언대로 유해는 무려 판테온의 라파엘로 옆에 묻혔다. 하지만 원통하게 죽어 신전에 묘를 쓰느니, 거친 콩이라도 편히 먹으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아무래도 콩먹방의 시청자는 카라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