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피사로, ‘봄, 아침, 구름, 에라니’, 1900년, 캔버스에 유채, 65.4×81.0㎝, 도쿄 후지 미술관 소장.
봄이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데, 날마다 창밖이 더 밝고, 매일 보는 가로수도 어제보다 더 초록이다. 용케 봄인 줄 알고 피어난 꽃송이를 보면 나른하고도 설렌다. 프랑스 북부 작은 마을 에라니,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1830~1903)의 집 앞 사과밭에도 봄이 왔다.
피사로는 1870년대에 모네, 르누아르, 드가, 카사트, 세잔 등 개성이 강하고 타협을 모르는 젊은 화가들을 하나로 묶어 매년 전시회를 열면서 ‘인상주의’라는 유파를 만들어 낸 구심점이었다. 그는 동료들보다 적게는 서너 살, 많게는 스무 살 이상 연상이었으나, 나이가 벼슬인 양 꼰대질을 했다면 예술가들이 그 주변에 모였을 리 없다. 그는 친절하고 따뜻하며 치우치지 않는 지혜를 가진 젊은 영혼이라고 불렸다. 오죽하면 ‘조상님이 청년이 돼서 나타났다’고 했을까. 그의 일곱 자녀 중 여섯이 화가가 됐는데, 모두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웠다니 그 참을성과 포용력만큼은 믿어도 좋겠다.
피사로는 1884년, 인구 500명이 대부분 농부인 에라니로 이사해 많은 풍경을 남겼다. 풍경화를 그리더라도 스케치만 야외에서 하고 완성은 실내에서 하던 오랜 관례를 깨고, 피사로는 하늘 아래 땅을 딛고 서서 햇빛을 느끼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그렸다. 그럴듯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을 지우거나, 없는 것을 더하지도 않아서, 고상한 파리의 평론가들은 그의 그림이 상스럽다고도 했다. 그러나 소박한 풀꽃을 사랑했던 화가는 자연을 비틀어 웅대한 광경을 만들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피사로의 그림을 보면, 나태주 시인의 글귀가 떠오른다. ‘봄이다,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