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안중근’의 고뇌에 공감… 전시회 찾는 2030들
1일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안중근 書(서)’ 특별전시장은 2030세대 젊은이들로 붐볐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안중근의사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과 지난 10월 24일부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5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을 열고 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러시아령 만주 하얼빈에서 한국 침탈 원흉(元兇)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했다. 이듬해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때 나이는 31세였다.
지난 1일 대학생 엄정빈씨가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안중근 書(서)' 특별전시장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 인물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다. 엄씨는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안 의사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이번 특별전에선 안 의사의 유묵(遺墨) 18점을 비롯, 안 의사의 편지와 사진, 당시의 각종 기사·전보 등 기록물이 공개됐다. 2030 관객들은 “교과서에서 보던 안 의사는 그저 ‘거룩한 영웅’이었는데 육필을 마주하니 우리와 같은 청년 때 이토록 큰일을 하셨다는 사실이 실감난다”고 했다. 한 20대 관객은 “독립을 이끈 ‘영웅’도 나처럼 고민 많고 열심히 살려고 애쓴 한 청년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박물관 측은 “2012년 개관 후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이 찾은 전시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대학생 엄정빈(24·서울 관악구)씨는 안 의사가 유학을 준비하며 프랑스인 빌렘 신부에게 보낸 편지를 한참 동안 읽으며 사진을 찍었다. 안 의사는 20세 때인 1899년 작성한 이 편지에서 빌렘 신부에게 “상하이나 도쿄에 가 4~5년간 공부하고 싶다”며 적절한 시기가 언제쯤일지 물었다. 엄씨는 “범접할 수 없는 영웅 같았던 안 의사가, 우리와 다름없는 한 인간으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까 고민하는 모습이 인간적이었다”고 했다.
안 의사의 ‘독립(獨立)’ 유묵 앞에 선 대학생 조모(20·대구시)씨의 표정은 숙연했다. 약지가 잘린 왼쪽 손바닥을 찍은 단지(斷指) 손도장이 선명했다. 조씨는 “교과서에서만 보던 단지 손도장을 실제로 보니 압도당하는 기분”이라며 “최근 혼란한 정국 뉴스를 보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곤 했는데, 안 의사 같은 분들이 손가락을 자르고 목숨을 던지며 세운 나라라는 깨달음이 들었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墨)을 촬영하고 있는 20대 관람객들. /장련성 기자
대학생 김주희(23·서울 성북구)씨는 베트남인 교환학생 응우옌 원응엇미(23)씨와 전시를 보러 왔다. 김씨는 “작년 민우혁 배우가 안 의사로 캐스팅된 뮤지컬 ‘영웅’을 보고 안 의사의 삶에 매료됐다”며 “친구 응우옌에게도 안 의사를 소개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응우옌씨는 “베트남도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국가”라며 “안 의사가 의거 전 작성한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적은 문서’를 보며 베트남의 독립운동가들을 떠올렸다”고 했다.
안 의사는 이 문서에서 명성황후 시해, 고종 황제 폐위, 을사늑약·정미7조약 강제 체결, 무고한 한국인 학살 등 이토의 죄상을 낱낱이 열거한다. 일제 헌법 초안을 작성하는 등 근대 일본 국가 제도의 기틀을 놓고 초대·5·7·10대 총리를 역임한 이토는 당대 동아시아의 최고 권력자였다. 한 관객은 “그런 이토를 식민지의 한 청년이 사살하고 그의 사후에도 마치 죄인을 다루듯 준엄히 꾸짖는 안 의사의 기상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관람객들은 “안 의사의 이토 사살이 세계를 뒤흔든 대사건이었음을 실감했다”고 했다. 중화민국 초대 임시대총통인 쑨원(孫文)은 안 의사 의거에 “약한 나라 죄인이요 강한 나라 재상이라/ 그래도 처지를 바꿔 놓으니 이등(이토)도 죄인 되리”라며 찬양했다. 안 의사는 비록 사형수였지만 뤼순 감옥의 간수들은 물론, 판사·검사·변호사들도 그의 인품에 감복했다고 한다.
권효은(19·대구시)씨는 순국 직전 한복 수의를 입은 안 의사 사진 앞에 멈춰서 한참 동안 응시했다. 사진 속 안 의사는 초연한 표정이다. 권씨는 “안 의사를 찍은 엽서가 일본 등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리에 팔려 일본이 엽서 발행을 금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수능을 마치고 혼자 서울 나들이를 왔는데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일본 국회도서관이 소장한 ‘동양평화론’ 복제본도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안 의사는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는 대신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시간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안 의사는 이 저서에서 자신이 일개 테러리스트로서가 아니라 한국·일본·중국 3국의 평화를 위해 거사했음을 밝히고자 했다.
안 의사의 구상은 유엔이나 유럽연합 같은 기구를 3국을 위해 설치하자는 선진적인 수준에 이르러 있었지만 일제가 형을 빨리 집행함으로써 ‘동양평화론’은 미완으로 남았다. 역사 교사를 꿈꾼다는 한 대학생은 “사료 강독 수업을 열심히 들어서 ‘동양평화론’에 나타난 안 의사의 사상을 깊이 있게 연구해보고 싶다”고 했다.
안 의사가 이토를 사살할 때 쓴 권총(브라우닝 M1900)의 실물은 현재 전하지 않으나 이런 전시에선 복제품을 출품할 때가 많다. 그러나 주최 측은 “독립과 동양 평화를 간절히 염원한 사상가로서의 면모에 주목하고자 했다”며 이 권총을 다루지 않았다. 김태웅 서울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항일 무장 투쟁가로서의 안 의사의 모습은 소설·영화·뮤지컬 등을 통해 충분히 조명됐다”며 “그런 까닭에 안 의사의 지식인·사상가적 면모가 2030세대를 더욱 매료시키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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