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24 15:30:32
눈 덮인 세상 때론 황량하게 때론 정겹게 묘사했어요
올해 양력 1월 20일은 대한(大寒)이었어요. 우리 선조들은 태양이 1년간 한 바퀴 돌아가는 길을 스물네 마디로 나눴는데, 이를 24절기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인 스물네 번째 절기 대한은 ‘큰 추위’라는 뜻인데요. 사람들은 대한이 오면 겨울이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추위를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는 희망을 가졌대요.
과거에는 겨울나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어요. 집이 없는 사람은 굶거나 얼어 죽기 일쑤였습니다.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밤에는 돌아가 쉴 따스한 보금자리가 특히 소중하게 여겨졌지요. 이런 모습은 옛사람들이 겨울의 모습을 그린 풍경화에 그대로 녹아 있어요. 이들이 겨울을 어떻게 보냈는지, 동·서양 화가와 그림을 살펴보며 알아볼게요.
(1)최북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18세기) /개인소장
◇그림처럼 살다간 겨울 나그네 화가
평생을 겨울 나그네로 살다 간 화가가 있습니다. 조선 영·정조 시대의 화가 최북(1712~1786·추정)입니다. 추위 속에서도 경치 좋기로 이름난 곳들을 유랑하며 겨울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죠.
그는 눈 오는 풍경을 즐겨 그렸어요. 하늘도, 땅도 모든 것이 새하얗게 바뀐 세상에 윤곽만 보이는 산봉우리와 앙상한 나무들을 빠른 붓질로 간략하게 그려냈죠. 그 솜씨가 일품이어서 그에게 설산(雪山)을 그려 달라고 주문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작품 1>을 보세요. 붓에 먹을 묻혀 단숨에 그려간 듯, 산봉우리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점차 흐릿해져 갑니다. 묽은 먹으로 쓱쓱 나뭇가지도 그렸어요. 작품 아래에는 조그맣게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눈보라 치는 밤에 어느 남자가 시중드는 아이와 함께 지나가는 모습입니다.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초가집 한 채가 보이네요. 이 집에서 키우는 듯 보이는 개 한 마리가 그들을 향해 짖고 있고요. 이 남자는 초가집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니니, 쉬지도 못하고 맹추위 속의 밤길을 헤매 다닐 것이 분명하겠네요.
그림 속 두 사람처럼 최북의 삶은 외로운 겨울 나그네와 같았어요. 아무 욕심 없이 오직 자기 예술 세계에 빠져 살았죠. 그는 끼니를 겨우 때울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돈을 모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죠. 자신의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에게 동전 몇 닢에도 선뜻 그림을 건네는가 하면, 돈 보따리를 싸들고 온다 해도 거드름을 피우면 그림을 팔지 않았어요.
이런 성격 때문에 한쪽 시력을 잃기도 했습니다. 지체 높은 사람이 찾아와 그림 한 점을 부탁했는데, 최북은 응하지 않았대요. 그 사람은 “감히 내 뜻을 거스르고도 성할 줄 아느냐”며 으름장을 놓았죠. 이런 대접에 진저리가 났는지 최북은 제 눈을 찔러 한쪽을 멀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기 귀를 자른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겨울 나그네의 최후는 쓸쓸했지요. 열흘을 굶다가 그림을 한 점 팔고, 그 돈으로 빈속에 술을 마시고는 취한 상태로 길모퉁이에서 쓰러져 얼어 죽고 맙니다. 뛰어난 예술인이었지만, 작품만 남긴 채 빈손으로 떠난 거예요.
우리나라 겨울 풍경화로는 조선 후기 화가 이인문(1745~1821)의 ‘설중방우(雪中訪友·눈 속에 벗을 방문하다)’도 유명해요. 눈 쌓인 초가집 창문 너머로 두 선비가 방 안에 마주 앉아 있어요. 한 사람은 주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방문객입니다. 담장 밖으로는 주인을 따라온 동자와 그를 맞는 또 다른 주인댁 동자가 있죠.
눈길을 뚫고 벗을 찾아갔다면 그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겠죠. 옛사람들은 이처럼 눈이 내렸는데도 발걸음을 하는 것을 상대에 대한 애틋함이나 예(禮)에서 비롯된다고 여겼어요. 폭설에도 스승을 찾아가 문 앞에서 배움을 청하는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 화가 정선(1676~1759)의 ‘정문입설(程門立雪·정이의 문에서 눈 속에 서다)에서도 잘 나타나 있죠.
(2)피터르 브뤼헐 ‘눈속의 사냥꾼, 1월’(1565)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겨울 풍경 그리려 알프스 여행
겨울 풍경화로 유명한 유럽의 화가는 누가 있을까요? <작품 2>는 피터르 브뤼헐(1525~1569)이 그린 겨울의 풍경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눈 속의 사냥꾼, 1월’이에요. 브뤼헐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서 활동하며 농부의 일상을 주로 그린 화가입니다. 이 그림은 브뤼헐이 벨기에 앤트워프 지역에 살던 부유한 은행가의 주문을 받아 네덜란드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그린 총 여섯 점의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1월의 모습이 담겨 있죠.
당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겨울철에 농부들은 먹거리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사냥을 나갔습니다. 작품 왼쪽 아래로 여러 마리의 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다가 마을로 돌아오는 두 남자가 보이네요. 개들마저 축 늘어져 발걸음이 지쳐있어요. 겨울 산을 온종일 헤매고 다닌 듯해요. 하지만 앞서 걸어가는 농부의 등에는 달랑 토끼 한 마리밖에 없으니 걱정이네요. 사냥한 고기만으로 여럿이 나눠 먹기에는 부족할 테니, 키우던 가축을 잡기도 했겠죠. 그림의 왼쪽 가장자리에 짚과 나뭇가지를 모아 장작불을 지피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보여요. 불 앞에서 멍하니 쉬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지요. 아마도 돼지를 잡은 후에 뻣뻣한 털을 그슬려 없애기 위해서 피운 불일 거예요.
이 그림이 유난히 추워 보이는 이유는 온통 눈으로 뒤덮인 뾰족한 산봉우리 때문일 텐데요. 마치 네덜란드가 아니라 알프스 산맥을 낀 스위스의 어느 마을 같은 느낌이 듭니다. 브뤼헐은 이십대 중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남부 프랑스와 알프스 산맥을 거쳐 이탈리아까지 긴 ‘스케치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그때 눈 쌓인 알프스의 풍경을 습작으로 여러 점 그렸는데, 이 중 하나를 고향 풍경 속에 혼합해 그린 것이랍니다.
작품 중앙 오른쪽으로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얼어붙은 연못 위에서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타고, 컬링 비슷한 놀이도 하는 것 같아요. 집 안도 냉기(冷氣)로 인해 춥기는 마찬가지였을 테니, 바깥에 나와 몸을 움직이는 게 추위를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겁니다. 네덜란드가 일찍이 동계 올림픽의 빙상 경기 종목들에서 강세를 나타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어 보이네요.
(3)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 ‘겨울 풍경’(1811) /런던내셔널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