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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최영림 작품관115

최영림 1955년 , 고뇌 , 27.5×25cm , 종이유채 2018-06-16 18:10:27 최영림은 한국 전쟁의 발발로 가족들과 결별 후 가난과 이산의 아픔을 안고 검은색을 주조로 침울한 분위기의 추상작업을 이어 나갔지만, 1959년 국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화풍의 변화가 생겼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흙과 모래로 마티에르를 내고 가늘지만 자유로운 선으로 형태를 구상화하여 근심 걱정 없이 밝고 즐거운 인물들과 어우러진 자연을 표현한다. 1940 일본 동경미술학교 중퇴 2022. 11. 14.
최영림 1954년 , 71.0☓55.5cm , 남으로 가는길 , 나무유채 2018-06-16 18:09:22 1950년대는 최영림에게 있어 시련과 고난의 시기였다. 혈혈단신으로 월남한 이후 떠돌이 생활이 이어지자 그의 화풍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 시기에 그는 거칠고 빠른 붓터치를 사용해 굵고 검은 선이 주가된 다양한 소재의 구상과 반추상 작품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꾸준히 담아낸 소재라면 여인과 가족을 꼽을 수 있다. 출품작에서도 작가는 일평생 그의 의식과 무의식을 지배한 처자식을 버려두고 왔다는 죄책감,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모성 넘치는 여인으로 승화시킨다. 작가의 심정이 투사된 여인의 모습은 단출하지만 어린 자식만은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맨 채 남 南 으로 향하고 있다. 인물의 표정은 전쟁의 처절함과 급박한 정황과는 거리가 있으나 오히려.. 2022. 11. 14.
최영림 1970년 116x116cm 무제 2018-06-11 23:00:45 작품설명 1970년 7월 신세계 초대작 출품 최영림 화 ( 작품 후면 기록) !! 1970년에 신세계는 심볼을 공작새로 바꿈. “나는 낡은 토담집의 벽토를 즐겨 캔버스 위에 흩뿌려 본다. 개수를 기다리는 듯 붉은 살을드러낸 토담. 난 거기서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본다. 모두의 고향인 흙, 구수한 흙냄새가 코끝을 스쳐 갈 때 나는 향기로운 여인의 탄생을 보는 것이다.”- 최영림(1989), 「최영림 데생집」, Hyundai Gallery 2022. 11. 14.
최영림 97X130.3cm (60호) 캔버스에 모래, 유채 1968년 우화 2018-05-25 00:25:43 작품설명 signed on the lower left and reverse LITERATURE『최영림展』, 호암갤러리, '90 (1990.1.8-1990.2.6) 『崔榮林』, 韓國近代美術硏究所, 1985, no.43 최영림은 캔버스에 황토를 바르고 그 위에 작업하여 전반적으로 황토색의 색조가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대게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크고 둥글고 넓적하게, 혹은 일그러진 모양이거나 얼굴의 형태없이 눈과 입, 코만을 간략히 그리거나 생략하여 해학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러한 인물 표현과 토속적인 색채에서 최영림만의 특유의 한국적 정감을 느낄 수 있다. 본 출품작은 한국의 민담, 누구나 한 번쯤 어릴 적 듣던 옛날이야기를 주제로 하여 향토적이지만 .. 2022. 11. 14.
1961년 쌍불 106x145cm 캔버스에 혼합재료 2018-05-11 23:48:42 상세설명 signed on the lower center and reverse LITERATURE: 『한국근대회화선집 양화12』, 금성출판사, 1990, p. 80 Framed “토속적이니 민화적이니 하는 내 그림에 대한 평이 싫지 않다. 결국 내 그림의 마티에르나 소재가 우리 것이라는 의미일 텐데, 나의 개성을 우리 것을 찾는 노력으로 보아 준다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영림 최영림의 작품은 에스키스나 데셍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캔버스 위에 모래와 안료를 섞어 형태를 쌓아 올린다. 이처럼 화면을 구성하는 조형 요소 중에서 바탕의 거친 질감 표현에 집중하는 마티에르 기법은 1960년대 당시 한국 화단의 앵포르멜 경향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1960년대에 그는.. 2022. 11. 12.
최영림 목판화 (29.5 * 62cm) 5/1 2018-05-02 20:51:15 2022. 11. 12.
최영림 1953년 드로잉 9점 종이에 연필, 수채 32×19.8cm 외 2018-04-24 20:28:55 상세설명 (좌측상단부터) a. 무제 1953, 종이에 연필, 수채, 32x19.8cm, signed on the lower right b. 무제, 종이에 연필, 수채, 21.5x26.5cm, signed on the lower right c. 무제, 종이에 연필, 수채, 색연필, 26x19cm, signed on the lower left d. 무제, 종이에 연필, 색연필, 35x21cm, signed on the lower right e. 무제,종이에 연필, 수채, 27x21cm, signed on the lower right f. 무제, 종이에 연필, 수채, 19x26cm, signed on the lower left g. 무제, 종이에 연필, 색연필, 35x21c.. 2022. 11. 12.
최영림 무제 목판화 60×60cm (1/5) 2018-04-24 20:26:25 최영림은 한국 전쟁의 발발로 가족들과 결별 후 가난과 이산의 아픔을 안고 검은색을 주조로 침울한 분위기의 추상작업을 이어 나갔지만, 1959년 국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화풍의 변화가 생겼다.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흙과 모래로 마티에르를 내고 가늘지만 자유로운 선으로 형태를 구상화하여 근심 걱정 없이 밝고 즐거운 인물들과 어우러진 자연을 표현한다. 1940 일본 동경미술학교 중퇴 2022. 11. 12.
최영림 1984년 33×112cm 평양의 나의 살던집 2018-03-10 17:21:19 LITERATURE: 『Choi YoungRim』, Gana Art Center, 2002, p. 92 『Choi YoungRim Collection』, Soomoon Seogwan, 1985, p. 202 2022. 11. 11.
최영림 1973년 선녀도 15호 캔버스에 혼합재료 2018-03-10 17:17:14 This work is accompanied by a certificate of authenticity issued by the Korean Art Appraisal Board. 2022. 11. 11.
최영림 1971년 12호 情 캔버스 혼합재료 018-03-10 17:15:50 2022. 11. 11.
최영림 1959년 굴비 15.8☓31.8cm 하드보드유채 2018-03-01 21:18:57 2022.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