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 기증] 문화재 전문가들 ‘컬렉션’ 평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건희·홍라희 부부가 1970년대에 유명한 수집가였던 서예가 손재형에게서 구입한 '1호 컬렉션'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산수화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인왕제색도’(국보 216호)는 삼성 측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미술품 2만1600여점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1751년 일흔여섯의 노(老)화가 정선은 60년 지기인 시인 이병연이 병을 떨치고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붓을 들었다. 폭우 그친 후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 정경을 실감나게 그린 진경산수화의 걸작. 친구는 나흘 후 세상을 떴지만 명작은 남았다. 이건희·홍라희 부부가 1970년대에 유명 수집가였던 서예가 손재형에게서 구입한 ‘1호 컬렉션’이라는 상징성도 크다.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회화사)은 “중국 회화의 발전을 보면 북송까지 맑은 선묘(線描)가 주를 이루고, 남송 이후에는 흐릿한 번짐이 특징인데 두 양식의 절충과 조화가 중국 화가들의 오랜 화두였다. 중국이 이루지 못한 숙제를 한국 땅에서 이뤄낸 대가가 바로 겸재”라며 “국립중앙박물관이 겸재의 대표작이라 할 최고의 명품을 갖게 된 것”이라고 했다.
고려 불화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전 세계 현존하는 고려 불화 170여 점 중 유일한 '천수관음도'다. /국립중앙박물관
전문가들이 꼽은 또 하나의 명품이 고려 불화인 ‘고려 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고려 불화는 독보적 예술성을 인정받는 문화재이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엔 5년 전 기증받은 ‘수월관음도’ 한 점뿐이었고 그마저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불교회화)는 “전 세계 현존하는 고려 불화 170여점 중 유일한 ‘천수관음도(千手觀音圖)’라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천개의 손과 손마다 눈이 달려 있는 보살의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의 자비력을 상징화했다. 다채로운 채색과 금니의 조화, 격조 있고 세련된 표현 양식 등 종교성과 예술성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포함해 ‘고려 시왕도’ ‘자수 아미타여래도’ ‘나한도' ‘수월관음도'(비지정문화재) 등 고려 불화 5점이 기증 목록에 올랐다. 지난 2010년 세계 각지에 흩어진 고려 불화를 한자리에 모아 특별전을 열었던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고려 불화의 빈 자리가 아쉬웠던 박물관 입장에선 엄청난 경사”라며 “한국 대표 박물관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해주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고려 불화인 '자수 아미타여래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55호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청동기 시대 제사장들이 주술적 의미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금속공예)은 “국보 255호 청동방울은 해방 이후 출토된 초기 청동기 유물 중 최고로 꼽히고, 보물 2008호 ‘경선사’명 청동북은 고려시대 쇠북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라며 “기존 박물관 소장품의 빈틈을 메우면서 풍부한 전시를 가능하게 해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도자·서화·전적·불교미술·금속공예 등 분야를 망라한 목록을 보며 “이건희 회장의 안목과 추진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컬렉션”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은 저서 ‘리컬렉션’에서 “돈이 있다고 해서 누구나 국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쉽지 않은 경로를 통해 어렵게 국보를 사들이고, 해외로 유출될 뻔한 우리 보물들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그의 수집은 ‘애국 활동’이었다”고 썼다.
※도움말 주신 분들: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정우택 동국대 명예교수,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종선 전 호암미술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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