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포로의 한숨 "北광산서 숨져간 내 전우들은 유령인가"
국군포로 잊은 대한민국
"조국이 불러주길 기다리다 광산에서 숨져간 그 많은 국군 포로들이 유령이란 말인가. 국가가 세운 박물관이 어떻게 국군 포로를 망각할 수 있나."
구순(九旬)을 며칠 앞둔 유영복씨는 답답한 표정이었다. 유씨는 육군 제5사단 27연대 소총수(일병)로 6·25에 참전해 1953년 6월 강원도 금화 전투에서 중공군에 붙잡힌 국군 포로 출신이다. 함경남도 단천 검덕·동암광산에서 30년 넘게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일흔 살이던 2000년 탈북했다. 그는 국립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이달 초 시작한 '전쟁포로, 평화를 말하다' 특별전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6·25 정전 65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전쟁 포로' 특별전은 주로 유엔군 포로수용소 실태를 다룬다. 하지만 어딘가 뒤틀려 있다. 전시는 유엔군이 포로 재교육을 위해 미 육군 심리전 본부 산하에 민간정보교육국을 설치하고 1951년 6월부터 반공교육을 실시했다고 소개한다. "미군은 이를 '배신자 프로그램'이라고 불렀는데, 이 교육의 목적은 본국으로 송환될 포로들을 '미국식 자유주의' 질서의 전파자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유엔군이 포로수용소에서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며 포로들에게 들려준 노래까지 '음악 교육을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 확산에 활용한' 사례로 꼽는다. '도라지타령' '아리랑타령' '노들강변' '천안삼거리' 같은 민요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을 들려줬다며 '이념 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전통 민요와 베토벤 '비창'이 이념 교육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의문이다.
국군 포로 출신 유영복씨는 허탈한 표정이었다. “일흔 나이에 북한을 탈출, 고국에 돌아왔는데….”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이달 초부터 개최한 ‘전쟁 포로, 평화를 말하다’특별전은 국군 포로를 다루지 않아 국가가 국군 포로를 망각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요와 베토벤 소나타가 이념교육?
특별전의 가장 큰 문제는 전쟁 포로 핵심인 국군 포로, 특히 전후(戰後) 돌아오지 못한 수만명 의 국군 포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 벽동 포로수용소에서 만든 선전용 '포로 올림픽' 화보를 전시하며 유엔군 포로 문제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룰 뿐이다. "국군·유엔군 포로수용소 자료가 없어서 그렇다고? 그렇다고 북한 선전책자만 늘어놓는 전쟁포로 전시회가 어디 있나. 돌아온 국군 포로들이 이렇게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귀환 국군 포로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당초 '북한 포로수용소의 국군 및 유엔군 포로들은 대부분 모국으로 귀환했다'고 소개했다. 국군 포로 현황도 1954년 기준 8656명이라고 밝혔다. 어느 자료에 근거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국군 포로와 그 가족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북한이 1951년 발표한 국군·유엔군 포로 규모 10만8000명은 물론 유엔군사령부가 1953년 8월 유엔에 보고한 국군 포로 및 실종자 숫자(8만2318명)의 10%밖에 안 되는 수치였기 때문이다.
박물관 측에 8656명이란 숫자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물었다. 이번 특별전을 책임진 염경화 학예연구관은 "한국전쟁 포로 전공자 조성환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 책 '한국전쟁과 포로'에 따른 통계"라고 했다. 이에 대해 조 소장은 "8656명이란 숫자는 북한이 주장한 국군 포로 숫자일 뿐"이라고 했다. 북한 측이 당초 밝힌 10만8000명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는 것이다. 한국과 유엔사는 정전 회담 이후에도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 송환 문제를 계속 제기했지만 북한은 국군 포로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1994년 고(故) 조창호 중위를 시작으로 국군 포로 80명이 돌아왔다. 귀환 국군 포로들은 대부분 광산 지역으로 끌려가 수십 년간 노역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북한 최대 납·아연 산지인 함남 단천 검덕광산과 동암광산에서 일한 유영복씨는 두 곳에만 1000명의 국군 포로가 일했다고 증언했다. 박물관 측은 뒤늦게 "한국으로 귀환한 국군 포로는 8000여 명에 불과하여 '돌아오지 못한 국군 포로'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안내문을 수정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전쟁 포로 특별전'에는 1994년 이후 귀환한 '국군 포로' 관련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탈북민과 국군 포로를 돕는 사단법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는 지난 18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을 왜곡한 이 전시를 당장 중단하고 주진오 관장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물관 측은 "현재로선 국군 포로 증언이나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전쟁 포로 특별전을 보완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1953년 육군 정훈장교가 촬영한 ‘막사로 들어가는 포로들’. 북한은 전후 수만명의 국군 포로를 억류해 강제노동을 시켰으나, ‘국군 포로는 한 명도 없다’고 우기고 있다.
◇"국군 포로 1명도 없다"는 北 선전에 맞장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과 거제시가 공동 주최한 이 전시는 거제시 연구 용역을 받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기획·연구를 맡았다. 거제 포로수용소 등 북한군 포로 위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북측의 유엔군 포로까지 다루면서 '전쟁 포로'로 범위를 넓혔지만 정작 북에 강제 억류된 국군 포로엔 눈감아버렸다. 북한 정권이 정전협정 이후 "강제로 억류된 국군 포로는 없다"고 한 선전에 대한민국이 맞장구치는 격이다.
국방부는 북한에 남아 있는 생존 국군 포로를 최대 500여 명으로 추산한다. 탈북자·귀환 국군 포로 증언을 토대로 추산한 숫자다. 이 수치도 10년 전에 만들어진 통계이기 때문에 세상을 떠난 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국군 포로 귀환은 2010년이 마지막이었다. 고령인 데다 국군 포로에 대한 감시도 심해져 점점 귀환 가능성은 줄어들고 있다.
우리 정부의 국군 포로 귀환 노력은 갈수록 시들해지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주 공개한 '2018 북한인권증진집행계획'엔 작년 역점 추진 과제로 들어 있던 '이산가족·납북자·국군 포로 문제 해결 노력'이 '이산가족 등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로 바뀌었다. 통일부는 국군 포로 송환이 계획 세부 항목에는 들어 있다고 해명했지만 정부 의지는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국군 포로를 돕는 사단법인 물망초 회원들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항의 시위를 갖고 있다.
유영복씨는 국군 포로에 대한 무관심에 서럽다고 했다. "국군 포로는 조국을 버린 배신자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며 버티다 숨졌다. 미국이 6·25 때 숨진 군인 유해를 나라 전체가 성대하게 맞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럽고 가슴이 아프다." '전쟁 포로' 전시장을 나서며 던진 말이 비수처럼 꽂혔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간 병사를 잊어버리면 누가 나가서 싸우려 하겠나."
[돌아온 국군 포로 80명 중 28명 생존… 7명은 유해로 귀환]
1994년 귀환한 고(故) 조창호 중위 이후 돌아온 국군 포로는 80명이다. 북·중 국경을 넘은 뒤 브로커를 통해 남쪽 가족과 연락해 도움을 받아 입국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중 생존자는 28명이다. 80대 중반부터 90대까지 고령이다. 이들은 2014년 '귀환국군용사회'를 만들어 북한의 국군 포로 탄압 실태를 알리고 국군 포로 송환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부는 1999년 국군 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 2007년 국군 포로 송환 및 대우 등에 관한 법을 제정, 국군 포로 송환 및 정착 지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귀환 국군 포로는 소속 부대에서 전역식을 갖고, 밀린 월급과 참전 유공자 수당, 정착 지원금을 제공받는다.
유해로 돌아온 국군 포로도 7명이다. 2015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고 손동식 이등중사는 육군 9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된 후 함경북도 무산 광산에서 탄광일에 시달리다 1984년 사망했다. 2005년 탈북한 딸 명화씨가 아버지 유해를 들여오는 데 성공해 DNA감식으로 국군 포로 손 중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국방부는 국군포로송환법 시행령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오던 국군 포로 환영식과 전역식, 국립묘지 안장식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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