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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뒤러의 토끼

by 주해 2023. 1. 31.

뒤러의 토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64] 뒤러의 토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64 뒤러의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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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브레히트 뒤러, 토끼, 1502년, 종이에 수채와 과슈, 25.1×22.6㎝, 빈 알베르티나 미술관 소장.

인간계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동물계에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의 토끼가 있다. 르네상스 회화의 혁신을 이끌었던 두 천재 예술가가 거의 동시에 완성한 두 작품은 공개된 이래 보는 이들 모두의 찬탄을 받으며 수많은 복제물을 양산해왔다.

이미 수백년 전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를 마치 우리 눈앞에서 살아 숨 쉬고, 손을 대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듯 생생하게 그려낸 두 화가의 놀라운 경지를 두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지만, 구태여 난도를 따지자면 토끼 쪽이 더 어려웠을 것이다. 토끼가 초상화를 그려달라며 자세를 잡고 가만히 앉아 있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뒤러는 실제 토끼를 면밀히 관찰해 생김새와 움직임을 다각도로 파악하며 많은 스케치를 한 뒤, 작업실에서는 죽은 토끼를 앞에 두고 세부를 완성했을 것이다.

토끼털은 부위에 따라 자라난 방향이 다르고 길이와 모질 또한 제각각인 데다 색깔 역시 흰색에서 갈색과 어두운 회색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뒤러는 왼쪽 위에서 내려오는 빛이 토끼털의 결에 따라 이리저리 반사되는 효과까지 터럭 하나 놓치지 않고 정밀하고 선명하게 그려냈다. 그러니 달랑 토끼 한 마리 그림인데도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러다 오른쪽 눈동자에 비친 창문까지 발견하고 나면 무릎을 치게 된다. 이는 물론 실제라기보다는 사실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뒤러의 ‘하이퍼 리얼리즘’ 기법이다.

이 작품은 재료 특성상 훼손 위험이 커서 거의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면 사실은 그림을 꺼내두면 토끼가 깡충깡충 뛰어나가 버릴까 봐 꽁꽁 싸두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