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복원의 세계
[만물상] 미술품 복원의 세계
만물상 미술품 복원의 세계
www.chosun.com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2022년 봄 개막한 ‘보화수보’ 전시를 보러 갔다가 고미술품 복원의 놀라운 세계를 접했다. 수보(修補)란 ‘낡은 것을 고치고 덜 갖춘 곳을 기운다’는 뜻이다. 2년여의 복원 과정을 거친 작품 수십 점 중엔 앞뒤 표지 대부분이 찢긴 조선 초기 문신 문집 ‘매헌선생문집’도 있었다. 표지의 남은 조각에 메움용 종이를 붙이고 천연 염색한 닥지를 덧붙이는 배접(褙接)이라는 보강 작업을 네 차례 했다. 옛 종이와 메움용 새 종이의 강도 차이로 인한 2차 손상을 막기 위해 덧댄 종이에 단파장 자외선을 일부러 쪼이는 열화(劣化) 작업도 한다.
▶때론 손상된 모습을 남기는 것도 복원이다. 보화수보전에 나온 심사정의 그림 ‘삼일포’는 벌레가 갉아먹은 충식(蟲蝕)으로 곳곳에 난 작은 구멍이 오히려 눈 내리는 풍경 같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전문가들은 고심 끝에 훼손된 부분을 메우되 색의 차이를 두어 눈 내리는 착각 효과를 남겼다.
▶미술품 복원엔 미학·역사·물리학·생물학·화공학·임산학·재료공학·금속공학 지식이 총동원된다. 최근에는 AI도 가세했다. 영국의 인공지능 공학도가 설립한 미술품 복원 업체는 피카소가 여성의 누드를 그린 스케치 위에 ‘맹인의 식사’란 그림을 새로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업체는 ‘맹인의 식사’를 훼손하지 않고 누드화를 복원하기 위해 AI에게 피카소의 붓터치와 색채, 물감의 높이까지 학습시킨 뒤 새 캔버스에 유화를 그렸다.
▶미국 피보디 에섹스 박물관이 소장한 19세기 8폭 병풍 ‘평안감사 도과급제자 환영도’가 11일 리움미술관에서 일반에 공개됐다. 이 병풍에도 보존 전문가들의 땀이 녹아 있다. 복원에 16개월이 걸렸는데, 벌레 먹은 구멍 1만개를 메우는 데만 전문가 3명이 하루 12시간씩 3개월 정성을 쏟았다. 지금껏 모호했던 그림 배열 순서도 최근 평양 시가를 찍은 인공위성 사진까지 참조해가며 정확히 밝혀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우리는 이렇다 할 복원 기술이 없어서 일본 전문가들에게 배워야 했다. 이번 병풍 복원은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삼성문화재단 내에 설치한 보존연구실이 맡았다. 그간 국내 유물 복원에만 재능 기부를 해오다 처음으로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 복원에 나섰다. 몇 해 전 방탄소년단 RM도 해외에 나간 우리 문화재 보존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그 돈으로 미국 LA 카운티 미술관에 소장된 조선 활옷을 복원해 국내에 들여와 재작년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했다. 우리 기술로 우리 문화재를 복원해 세계와 즐기는 시대가 됐다.
'한국 미술 > 한국 미술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미술과 부산 (13)..... 부산에 뿌리내린 피란 화가들. (0) | 2025.02.15 |
---|---|
백석(1912 ~ 1996) : 여승(女僧) :1936.01.20 : 16.5 x 21cm (2) | 2024.12.23 |
제36회 이중섭미술상 시상식.....아버지가 간직했던 이중섭 그림, 이젠 못 찾아도 아쉽지 않소 (6) | 2024.11.08 |
[살롱 드 경성] 金剛처럼 고집 센 상남자, 그가 그린 웅대한 한국의 山 ....근대 한국화단의 큰 봉우리 금강산의 화가 소정 변관식 (10) | 2024.10.05 |
김환기 '푸른 점화' 78억... 한국 미술품 세 번째 고가.....26일 크리스티 홍콩 경매 기록최고가 1~10위 모두 김환기 (1) | 2024.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