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3 15:41:42
시원스런 파초문과 만개한 국화문이 인상적인 백자호다. 풍만하게 부푼 어깨에서 하부로떨어지는 유려한 곡선과 적당한 높이로 직립한 구연은 조선 후기 백자 입호의 기형적 특징을 그대로 드러낸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제작해 붙인 동체는 내부와 외부의 이음새를 세심히 마감했고, 잘 정제된 태토 위에 시유한 유약은 일정한 두께로 고르게 녹아 광택이 좋다.
안 굽으로 깎아낸 굽바닥에는 모래받침의 흔적이 보이며, 접지면의 유약은 깔끔하게닦아 마무리했다.동체의 바닥에서 어깨까지 풍성하게 차오른 파초문은 ‘V’자 형태로 힘차게 뻗어 상승감을준다. 그 사이에 둥글게 말려 올라오는 새로운 잎은 불이 탄 뒤에도 속심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는 파초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이파리의 모양과 잎맥 등의 사실적인 묘사와 화면 구성, 청화안료의 농담 조절 등을 미루어 볼 때 숙련된 화원의 솜씨임이 짐작된다. 이처럼 도자에 파초를 시문한 사례로는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백자청화화분문호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278호를 들 수 있다.
다만 화분에 심은 파초의 모습으로, 출품작과 형상이나 묘사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파초는 중국 당나라 서예가인 회소懷素, 725-785가 종이를 살 돈이 없어 그 잎에 시를 적으며학문에 정진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어, 어려운 생활에도 학문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매진하는 선비의 정신을 상징하는 소재이다.국화문도 ‘V’ 형태로 뻗어 파초문과 통일감을 주었으며, 활짝 핀 국화꽃을 측면에서 바라본 반달 모양으로 그린 점이 눈에 띈다.
꽃잎은 쌍구로 세밀히 묘사했고 청화안료의 농담을 조절해 양감을 더했으며 줄기와 이파리는 몰골로 처리했다. 청화로 그린 국화문의 사례는 파초에 비해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회화적인 맛이 무엇보다 잘 살아 있다. 국화를 바라본 시점을 측면으로 설정해 지면에서 솟아 오른 줄기와 이파리를 사실감 있게 표현했으며, 주변에 자라는 잡초들도 함께 그려 마치 한 폭의 회화작품을 옮겨놓은 듯하다.
앞서 언급했듯 국화는 도자문양은 물론 문학이나 회화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 늦은 가을첫 추위를 이겨내며 피는 꽃이기에 사군자로 칭송 받았으며, 결기 있게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한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일화와 더불어 은일隱逸의 이미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이렇듯 파초와 국화는 조선시대 선비가 추구하고자 했던 이상과 삶을 내포하고 있다.
이두 소재의 조합인 백자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우며, 기면 위에 유감없이 펼쳐낸 회화적기량이 물씬한 필치와 당당한 기형에서 조선시대 선비의 기개와 풍취가 느껴지는 작품이라 하겠다.파초 한 그루를 그 왼편에 심어 빗소리를 듣는다. … (중략) …매화는 바깥채에 심고, 작약과 월계화와 사계화는 안뜰에 둔다.석류와 국화 같은 것은 안채와 바깥채에 나눠 기른다.패랭이꽃과 맨드라미는 안채 섬돌에 흩어 심는다.
장혼張混, 1759-1828, 「평생지平生志」 中참고도판백자청화화분문호, JoSeon Period,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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