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22 08: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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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왕국]
15세기, 수도 슈리성 세우며 탄생… 동아시아 무역으로 경제적 발전 이뤄
일본, 메이지 유신 때 영토 강제 흡수… 淸과의 외교 단절, 왕 강제 이주 시켜
1879년 멸망하며 오키나와현에 편입
지난해 10월 31일 일본 오키나와의 유명 관광지인 슈리(首里)성에 불이 나 주요 건물 7채가 소실됐습니다. 슈리성은 오키나와의 옛 독립국인 류큐(琉球) 왕국(1429~1879)의 수도 성으로, 1879년 류큐 왕국이 멸망해 오키나와현에 편입되기 전까지 번성했던 곳입니다. 최근 일본 연구진은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슈리성을 복원하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어요.
슈리성 화재를 계기로 류큐 왕국의 역사도 재조명되고 있어요. '밝게 빛나는 구슬 같은 섬'이라는 의미의 류큐 제도는 일본과 대만 사이에 동서로 약 1000㎞, 남북으로 약 400㎞를 잇는 160여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류큐 왕국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운명을 겪었을까요?
◇15세기 건국… 동아시아 무역으로 전성기
류큐 군도에 처음으로 나타났던 국가 형태는 10~11세기 무렵 '아지(按司)'라고 불리던 족장들이 이끌던 부족국가였어요. 섬에 살던 원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며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점차 생산력이 향상되면서 각 지역에 부와 권력을 가진 아지가 생겨났죠. 아지들의 세력 다툼 끝에 14세기경 주잔(中山), 호쿠잔(北山), 난잔(南山)이라는 세 왕국이 생겨났어요. 이 중 세력이 가장 강했던 주잔이 다른 두 나라를 차례대로 정복했고, 수도 슈리성을 세우며 류큐 왕국이 탄생했습니다.
▲ 슈리성은 일본 오키나와현의 옛 독립국 류큐 왕국의 수도 성입니다. 1933년 일본 국보로 지정됐지만 태평양전쟁 때 소실됐고, 1992년 이후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쳤습니다. 슈리성터는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어요. /게티이미지뱅크
1430년 명나라의 선덕제는 삼국 통일을 이끈 주잔의 하시(巴志)에게 '쇼(尙)'라는 성씨를 내리고 국왕으로 책봉했어요. 하지만 그의 사후 왕위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났고, 당시 관리였던 가나마루(金丸)가 새 왕으로 즉위해 자신을 쇼엔(尙円)이라고 칭합니다. 이 시기부터 이전 제1 쇼씨 왕조와 구분해 제2 쇼씨 왕조라고 부릅니다.
류큐 왕국의 황금기는 제2쇼씨 왕조의 3대 왕인 쇼신(尙眞)왕 때였어요. 당시 명나라는 해금 정책을 시행해 해외 무역을 제한하고 있었는데, 류큐 왕국은 명과의 조공 관계를 통해 이 제한에서 벗어났어요. 이를 통해 명나라와 조선·일본·동남아시아를 잇는 무역을 통해 눈부신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죠.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흡수
류큐 왕국 역시 당시 격변하던 동아시아 정세에서 예외가 될 순 없었습니다. 첫 위기는 1609년 사쓰마번(현재 규슈 남부의 가고시마현) 세력의 침략이었습니다. 이들은 임진왜란 등 국내외 전쟁에 참전하면서 겪게 된 재정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류큐 왕국을 노렸어요. 대외 전쟁 경험이 없던 류큐 왕국은 사쓰마 군대 앞에 맥없이 무너졌죠. 사쓰마 군대는 왕과 왕자 등 100여명을 인질로 잡고, 매년 쌀 8000석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받아내요.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류큐 왕국은 독립국의 지위는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1868년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며 상황이 더욱 악화됩니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은 근대화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어요. 1872년 타이완 점령에 나서면서 류큐 왕국을 류큐 번으로 재편했고, 이어 1875년에는 청나라와 외교 관계를 단절할 것을 강요했죠. 1879년 일본은 류큐의 마지막 왕인 쇼타이(尙泰)왕을 후작에 봉하고 왕세자와 함께 도쿄로 강제 이주시켰어요. 이어 오키나와현을 설치하고 류큐 를 편입시키면서 류큐 왕국은 공식적으로 멸망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엔 '유구국'으로 기록]
우리나라와 류큐 왕국의 교류는 고려 시대부터 시작됐어요. '고려사'에는 1389년 류큐국이 왜구에게 붙잡혔던 고려인을 보호해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또 1955년 오키나와현에서 '계유년에 고려의 기와 장인이 만들다'라는 글이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기도 했어요.
조선 시대에는 류큐 왕국과 관련된 기록이 더 많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류큐국을 뜻하는 '유구국'이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1416년(태종 16년)에는 류큐에 사신을 파견해 왜구에 잡혀갔던 조선인 44명을 데려왔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두 나라는 꾸준히 사신과 예물을 보내며 교류했지만, 류큐 왕국이 사쓰마번의 침략을 받은 이후엔 교류가 거의 끊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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