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미술/전시 . 탐방 . 아트페어

언제 작품이 말을 걸지 모른다… AI가 시시각각 바꾸는 이 공간‘설치미술의 거장’ 필립 파레노리움미술관서 국내 첫 개인전 28일 개막

by 주해 2024. 2. 27.

언제 작품이 말을 걸지 모른다… AI가 시시각각 바꾸는 이 공간 

 

언제 작품이 말을 걸지 모른다… AI가 시시각각 바꾸는 이 공간

언제 작품이 말을 걸지 모른다 AI가 시시각각 바꾸는 이 공간 설치미술의 거장 필립 파레노 리움미술관서 국내 첫 개인전 28일 개막

www.chosun.com

세계적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의 작품 ‘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 다양한 물고기 모양 헬륨 풍선이 전시장에 둥둥 떠다녀 거대한 어항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리움미술관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 야외 덱에 높이 14m 타워가 우뚝 섰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기계 탑 같지만, 엄연한 ‘작품’이다. 미술관은 이 신작을 위해 2012년부터 설치돼 있던 리움의 ‘상징’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도 철거했다.

리움미술관 야외 덱에 설치된 필립 파레노의 신작 ‘막(膜)’. /리움미술관

세계적 설치미술가 필립 파레노(60)의 국내 첫 개인전 ‘보이스(VOICES)’가 리움미술관에서 28일 개막한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며 자연과 기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보여온 작가의 아시아 최대 규모 전시다. 1986년 초기작부터 신작까지 40여점을 미술관 전체 공간에 펼쳤다. 리움이 전관을 모두 사용해 전시를 선보이는 건 처음.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의 블록버스터 전시로 일찍부터 기대를 모았다.

전시장을 찾은 작가 필립 파레노. /뉴시스

입구의 야외 덱에서 전시가 시작된다. 신작 타워 ‘막(膜)’은 사실 인공지능이다. 42개의 센서를 탑재해 기온, 습도, 풍량, 소음, 대기오염, 미세한 진동까지 지상의 환경 요소를 수집해 미술관 내부로 보낸다. 전송된 데이터가 전시장에서 다채로운 사운드로 전환되며 작품을 작동시킨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실제 외부 세계에서 온 데이터를 작품에 활용하고 싶었다”며 “미술관이라는 곳은 항상 닫혀져 있는 공간 아닌가. 비싼 작품을 진열해 외부와 단절된 곳에 틈을 내고 싶었다”고 했다.

그라운드 갤러리 전시 전경. 키네틱 공간으로 변신한 이 곳에선 모든 것이 깜빡이고 움직인다. /리움미술관

미술관 전체가 거대한 자동기계로 변신했다. 전시장은 소란스럽다. 조명이 깜박이고 벽이 움직이고 시계 태엽이 작동한다.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사운드와 음악이 공간을 압도한다. 물고기 모양의 헬륨 풍선이 둥둥 떠다니고, 피아노가 저 홀로 연주하다 멈춘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수많은 변수와 우연이 상호작용하면서 전시 환경이 계속 바뀐다. 변화하는 모든 작품의 과정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 필립 파레노 작품의 특징”이라고 했다.

M2 지하1층 전시장 전경. /리움미술관

M2의 지하1층 창문엔 오렌지색 필름을 입혔다. 석양빛으로 물든 공간에 눈사람 모양의 얼음조각들이 놓여있다. 눈사람이 서서히 녹아내리면서 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까지 스피커를 통해 증폭된다. 공중에 떠다니는 물고기 풍선은 마치 거대한 어항 속으로 들어온 듯 몽환적 느낌을 준다. 블랙박스에선 세 편의 영상이 반복 상영된다. 마릴린 먼로를 환생시킨 영상 ‘마릴린’(2012)은 기계 장치를 통해 전설의 여배우를 시선과 음성, 필체까지 구현해 허구의 눈속임으로 관객을 홀린다.

M2 지하1층 창문엔 오렌지색 필름을 입혔다. 석양빛 물든 공간에 놓인 눈사람은 설치작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1995~2023). 공중에 떠다니는 물고기 풍선은 '내 방은 또 다른 어항'(2022)이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뉴시스

모든 전시를 관통하는 주인공은 목소리. 인간의 목소리 같기도, 기계음 같기도 한 소리가 전시 공간을 떠돈다. 배우 배두나 목소리가 인공지능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로 탄생했다. 작가는 “야외 타워에 탑재된 센서들을 다 통합시키면 어떤 캐릭터가 만들어진다고 봤다. 그 캐릭터는 대기의 변화, 지각의 변동 같은 모든 걸 예민하게 느끼며 타워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내가 상상한 이 캐릭터에게 인간의 목소리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M2 1층 전시 전경. 여러 협업자들과 제작한 1990년대~2000년대 초기작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리움미술관

작품은 아직 미완성이다. 관객이 움직이고, 외부 환경과 작용하면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김성원 부관장은 “데이터가 상호 교류하고 외부 요소에 자극을 받으면서 전시 공간 자체가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처럼 변화할 것”이라며 “보는 전시가 아니라 공연 같은 전시다. 오래 머물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작가가 덧붙였다. “나는 어떤 색상 혹은 공간의 소리적인 특성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서 전시를 구축한다. 그 전시는 매우 연약한 구조로 만들어져서 몇 달이 지나면 바스라지고 말 것이다.” 7월 7일까지. 관람료 1만8000원.

필립 파레노 개인전 '보이스' 개막을 앞두고 26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한 참석자가 M2 1층에 전시된 '루미나리에'를 감상하고 있다. 섬유 유리 소재의 6인석 벤치와 24개의 유리 조명 유닛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연합뉴스

☞필립 파레노

프랑스에서 거주하고 활동하는 설치미술 거장. 시간과 기억에 주목하면서, 데이터 연동과 인공지능 등 최신 기술을 활용한 전시 방식을 탐구해 왔다. 퐁피두센터, 구겐하임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테이트 모던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