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장 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 Siméon Chardin·1699~1779) : 카드로 집 짓는 소년

by 주해 2023. 2. 28.

카드로 집 짓는 소년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68] 카드로 집 짓는 소년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68 카드로 집 짓는 소년

www.chosun.com

사랑스러운 소년이다. 천방지축 뛰어놀던 어린 시절은 지났고, 불안과 불만이 차오르는 사춘기는 아직 아니다. 예의와 절제를 익힌 몸가짐은 단정하나 장밋빛 뺨에는 여전히 순수함과 호기심이 남았다. 이 소년은 파리의 가구 장인 장-자크 르누아의 아들 장-알렉상드르다. 아들을 이토록 곱게 키운 건 부모의 공이겠지만, 그 모습을 오래 남긴 건 르누아의 오랜 친구였던 화가 장 시메옹 샤르댕(Jean-Baptiste Siméon Chardin·1699~1779)이다. 샤르댕은 부드러운 갈색 화면 속에 안정감 있는 녹색을 적절히 배치해 조용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 그 가운데 뽀얀 분가루가 묻어나올 듯 보송보송한 소년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소년은 아버지가 손수 만들었을 묵직한 테이블에 몸을 기댄 채, 카드로 집을 짓는다. 동전을 보니 어른들이 카드놀이를 하고 난 다음인가 보다. 노름과 내기는 위험한 어른들의 세상이지만, 어린 소년의 눈에 카드는 그저 집 쌓기 장난감일 뿐. 흰 뒷면을 들고 있는 그에게 카드가 어떤 패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일층을 완성한 소년은 지금 잠깐 숨을 참고서 이층을 올릴 참이다.

서양 문화에서 ‘카드로 지은 집’이란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찰나의 성취만을 이룰 뿐, 무엇이든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허무의 상징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든 탑이 무너지랴’하지 않는가. 오로지 쌓기에 집중한 소년은 아무리 카드로 짓는 집이라도 정성을 다해 균형을 찾으면 견고하리라는 믿음을 준다. 샤르댕은 친구의 어린 아들이 언젠가는 온갖 유혹에 시달릴 어른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조심스레 카드를 쌓던 기억을 간직하고 매사에 신중한 어른이 되길 바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