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당구채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에서 열리는 경매에 곧 출품된다고 해요. 경매 시작가가 3만5000유로(약 4700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당구채 이야기는 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8년으로 거슬러 가요. 당시 헤밍웨이는 이탈리아 북부 마조레 호수 근처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호텔 바에서 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였던 현지인 아르날도 잠페레티를 만났어요. 1차 세계대전에 적십자 요원으로 참전했던 헤밍웨이는 그와 밤새 전쟁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다 곧 열릴 ‘미스 이탈리아’에서 누가 우승자가 될지 내기를 했어요. 헤밍웨이는 잠페레티의 누이가, 잠페레티는 다른 모델이 우승한다고 했죠. 둘은 술값 내기를 했는데, 헤밍웨이는 당구채까지 걸었어요. 결국 대회에선 잠페레티가 꼽은 모델이 우승했고, 헤밍웨이는 ‘내 젊은 친구 아르날도에게, 그의 아름다운 누이 오르넬라에게 경의를 표하며’라는 편지와 함께 당구채를 선물로 줬다네요. 잠페레티는 죽는 날까지 이 당구채를 아꼈다고 해요.
헤밍웨이는 자기가 쓴 소설처럼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인생을 살았던 작가로 유명해요. 그는 1·2차 세계 대전, 스페인 내전 등 격랑의 20세기 역사적 현장을 온몸으로 직접 겪었지요. 그런 인생은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걸작으로 남았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박물관 종군 기자로 스페인 내전을 취재하고 있는 헤밍웨이(가운데).
◇무기여 잘 있거라!
1899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태어난 헤밍웨이는 낚시와 사냥을 즐기는 활동적인 아이였어요. 1917년 고등학교 졸업 후 기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1차 세계 대전(1914~1918) 때 육군에 지원했지만 시력이 나빠 입대하지 못했어요. 결국 전쟁 막바지인 1918년 적십자 구급차의 운전사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일하게 됐죠. 하지만 다리에 박격포를 맞아 크게 다쳐 밀라노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거기에서 간호사 아그네스 본 쿠로프스키와 사랑에 빠졌어요. 그는 훗날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겪은 경험을 소설로 씁니다. 바로 그를 유명 작가 반열에 올려 준 ‘무기여 잘 있거라’(1929)예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인이 영국 간호사와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아내와 아이가 목숨을 잃는다는 내용이에요.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반전(反戰) 소설로 유명합니다.
/존 F.케네디 대통령 도서관&박물관 적십자 요원으로 1918년 1차 세계대전때 이탈리아 전장에 갔다가 다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에 머물던 헤밍웨이.
◇'잃어버린 세대’의 첫 등장
전쟁이 끝나자 헤밍웨이는 미국으로 돌아와 토론토 데일리스타지에 취업했어요. 그리고 1921년부터 7년간 특파원으로 프랑스 파리에 거주했어요. 파리에서 그는 작가이자 예술가들을 후원한 거트루드 스타인(1874~1946)을 만났어요. 헤밍웨이는 그녀가 운영하는 살롱에서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 화가 파블로 피카소 등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했어요.
거기에서 헤밍웨이는 첫 장편소설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1926)를 집필했어요. 그는 소설 서문에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어요. 사실 스타인이 한 말을 헤밍웨이가 인용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소설은 주인공인 신문기자 제이크 반즈를 통해 ‘잃어버린 세대’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박물관 1934년 헤밍웨이가 쿠바 아바나 항구에서 잡은 청새치를 들어보이고 있어요.
◇스페인 내전
헤밍웨이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30대 대부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살았어요.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즐기고, 카리브해에서 거대한 청새치를 낚고, 스페인에서 투우를 즐겼죠.
그는 유럽에서도 특히 스페인에 큰 애정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1936년 스페인에선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어요. 2월 총선거에서 공화파 정권이 승리하자 프랑코 장군을 중심으로 군부가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 내전(1936~1939)’으로 발전했어요. 헤밍웨이는 공화파를 지지하는 모금 운동에도 참여했어요. 그러다 1937년엔 직접 스페인에 가서 내전 상황을 취재했지요. 이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0)를 썼습니다. 미국 대학교수 로버트 조던이 스페인 내전에서 반(反)프랑코파인 게릴라 부대에 참가하는 이야기예요.
◇2차 세계 대전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을 취재한 후 쿠바로 가 머물렀어요. 그러다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자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 자기 낚싯배로 쿠바 연안에서 독일의 유보트(잠수함)를 수색하겠다고 제안했죠. 그러곤 배에 통신 장치와 기관총을 설치한 채 순찰에 나섰고, 실제 유보트 여러 척을 포착해 보고했어요.
그리고 영국에서 종군기자로 2차 세계 대전에 대해 기사를 썼는데,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현장에도 있었죠. 이 작전은 미국·영국 등 연합군이 프랑스에서 독일을 몰아내기 위해 노르망디 해안으로 상륙한 것으로, 2차 세계 대전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작전이에요. 헤밍웨이는 상륙에 성공한 연합군이 파리로 진격할 때 함께 이동하며 기자로 활약했어요.
마침내 연합군이 파리에 입성했을 때 헤밍웨이는 곧장 리츠 호텔의 바로 달려갔대요. 그곳은 그가 전쟁 전 여러 예술가들과 어울렸던 장소였어요. 지금도 이곳은 ‘헤밍웨이 바’로 불립니다.
전쟁 후 그는 쿠바에 머물며 집필에 매진했어요. 그리고 쿠바에서 낚시한 경험을 담아 마지막 역작 ‘노인과 바다’(1952)를 썼어요. 이 작품으로 그는 퓰리처상(1953)과 노벨문학상(1954)을 받았지만, 몸이 아파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대요. 이후 미국 아이다호에 머물던 헤밍웨이는 61세 나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몇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모험으로 가득했던 젊은 날에 비하면 너무 허무하게 떠난 겁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무슨 뜻?]
이 소설 제목은 17세기 영국 성공회 성직자 존 던(1572~1631)이 쓴 기도문을 인용한 거예요. ‘세상 어느 누구도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다.(중략) 그러니 저 소리가 누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인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이니.’ 당시 영국에선 누군가 죽으면 교회당 종을 쳤는데, 종소리가 들리면 귀족들이 하인에게 누가 죽었는지 알아오라고 시켰대요. 던의 기도문은 누구의 죽음이든 공동체의 일이며 소중하니 애도를 표하라는 메시지로 해석됩니다. 헤밍웨이도 작품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문구를 제목으로 쓴 것으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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