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의 서판, 기원전 7세기, 진흙판, 15.24x13.33㎝, 런던 영국박물관 소장.
이 진흙판은 쐐기문자 문서 중 가장 유명하고도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다. 바로 신들이 대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파괴했지만, 한 남자가 미리 커다란 배를 만들어 온갖 동물을 태우고 긴 항해 끝에 살아남았다는 것.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보다 천년 앞서 쓰인 이 이야기는 인류 최고(最古) 문학이라 할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다.
‘길가메시 서사시 11번 서판’이라고도 하는 이 문서는 고대 아시리아 왕국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 있었다. 문자와 지식을 중시했던 아슈르바니팔은 천문학과 수학, 문학, 사전을 아우르는 장서를 체계적으로 제작해 니네베의 궁전에 도서관을 지어 소장했다. 아시리아 멸망 후 2000년 동안 모래사막에 묻혀있던 방대한 그의 도서관은 1850년대에 영국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런던으로 옮겼다.
1872년, 서판 내용을 처음 해독한 건 영국 박물관 아시리아 부서의 조수였던 조지 스미스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학교를 다닌 적 없는 스미스는 다만 아시리아라는 고대 왕국에 매료되어 그 문자를 홀로 터득했고, 일하다 점심시간이면 박물관으로 달려가 새롭게 발굴된 서판들을 한없이 살펴보던 명민한 청년이었다. 마침내 박물관 관계자 눈에 띄어 조수로 고용된 그는 밤마다 수장고에서 먼지 쌓인 서판의 파편들을 정리하다 대홍수 이야기를 읽게 됐다. 흥분한 나머지 옷을 벗어 던지며 뛰어다녔다는 그는 이후 발굴단 일원으로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 현장에 파견됐다가 이질에 걸려 36세에 세상을 떴다. 손바닥 크기의 이 서판은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왕과,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지식을 사랑했던 젊은이의 시대를 초월한 협업 덕택에 세상에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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