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31 09:34:41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8/31/SXHL5AGNZBFDZBG22HTFSRIZYA/
젊은 프란스 프란켄, 수집가의 캐비닛, 1617년, 목판에 유채, 76.7x119.1㎝, 영국 왕실 컬렉션 소장.
미켈란젤로의 습작, 동시대 성화와 풍경화, 기름진 고기를 군침 돌도록 정밀하게 그린 정물화, 곤충류의 세밀화, 박제한 투구게, 물고기와 해마, 각양각색 조개껍데기와 상어 이빨, 귀금속과 희귀 광물, 반들반들 빛나는 동양의 칠기 함, 이국적인 칼과 수북이 쌓인 금화,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온갖 문서…. 이 모든 것을 어지럽게 늘어놓은 이곳은 어느 흔한 17세기 수집가의 방이다.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는 인공과 자연, 예술과 일상을 구분하지 않고 오직 진귀하고 특이하여 호기심을 자극하며 소유욕을 부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수집해서 따로 마련한 방에 모아 두고 서로 보여주며 의견을 나누는 취미가 크게 유행했다. 만약 이 수집가의 유산이 현대로 이어졌다면 틀림없이 한군데 모이지 못하고, 미술관,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과학관, 도서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지적 도약은 때로는 이렇게 아무런 기준 없이 오직 흥미와 호기심에 이끌려 모아놓은 잡동사니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호기심 캐비닛’ 혹은 ‘경탄의 방’이라 부르던 수집가의 서재를 회화의 한 장르로 만들어 큰 인기를 누린 건 젊은 프란스 프랑컨(Frans II Francken·1581~1642). 그는 오늘날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16세기부터 5대째 화업을 이어갔던 명망 있는 화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 그림 오른쪽 귀퉁이를 확대해 보면 모든 지식과 예술의 도구를 마구잡이로 부수는 당나귀 머리를 한 남자가 작게 그려져 있다. 우상 파괴라는 명목으로 예술과 서적을 불사르던 일부 기독교인에 대한 일침이다. 당나귀 머리는 ‘무지’의 상징이다. 파괴란 그저 무지의 소산일 뿐, 종교적 행위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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