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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장 프랑수아 밀레, ‘새 사냥’, 1874년, 캔버스에 유채, 73.7×92.7㎝,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처참하고 찬란한 아우성

by 주해 2022. 12. 12.

2021-09-07 09:42:18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9/07/PGTQUUQANBGGHDXML73NCC3NIM/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94] 처참하고 찬란한 아우성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94 처참하고 찬란한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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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프랑수아 밀레, ‘새 사냥’, 1874년, 캔버스에 유채, 73.7×92.7㎝,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이삭줍기’와 ‘만종’ 등으로 19세기 말 프랑스 농부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1814~1875)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흘깃 보면 추수를 마친 농부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축포를 쏘아 올리고, 눈부시게 폭발하는 금빛 불꽃 아래서 춤이라도 추는 듯한 축제 분위기다. 하지만 마치 물결치는 파도처럼 너울대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건 불꽃이 아니라 비둘기 떼다.

농부들은 지금 나뭇가지에 줄지어 앉았던 비둘기들에게 횃불을 휘둘러 놀란 새들이 밝은 빛에 눈이 먼 채 푸드덕 날아오를 때 마구잡이로 몽둥이질을 해 사냥하고 있다. 힘차게 뛰어올라 새들을 후려치는 이, 땅바닥에 엎드려 떨어진 새를 움켜쥐고 자루에 주워 담느라 야단인 이들에게는 이 밤이 축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닌 밤중에 그야말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새들의 모습은 측은하기 짝이 없다. 이는 밀레가 어린 시절에 실제로 목격했던 새 사냥을 바탕으로 그렸다고 전한다. 노르망디에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밀레는 일찍이 미술 학교에 진학하고자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안 해 본 농사일이 없었던 것이다.

화가가 된 뒤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에 터전을 잡고 사실적인 풍경화로 일가를 이루었을 때도 밀레는 풍경에만 집중하기보다는 대자연에 순종하며 신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성실히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을 고귀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존경받는 화가의 삶을 살다 생의 마지막에 밀레의 마음에 떠올랐던 건 어떻게든 먹고살려는 가난한 이들 손에 처참하게 떨어져 나가는 비둘기 떼의 아우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