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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영의정 조현명의 ‘귀록집’.........“당신의 뱃속에는 성인의 마음이 있다”

by 주해 2022. 12. 8.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이 그린 ‘옥동척강’. 영조 15년(1739) 어느 늦여름 조현명, 이춘제, 송익보, 정선, 이병연 등이 모임을 갖고 옥류동에서 청풍계로 등산한 것을 기념해 그린 그림. 왼쪽 산 중턱에 등산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작게 보인다. 그중 하나가 ‘귀록집’의 주인공 조현명이다. /개인 소장

“당신 뱃속에는 성인의 마음이 있소. 할 수 있으면 그냥 하는 거요. 어째서 할 겨를이 없다고 하시오(儞肚子裡有一箇夫子心, 能做便做, 何云未暇)?”

“종일 학교에서 선생이 무슨 책 읽으라고 하면 무슨 책을 읽고, 무슨 글을 쓰라고 하면 무슨 글을 써야 하니, 겨를이 없습니다(答曰, 終日在學, 先生叫念何書卽念何書, 叫寫何文卽寫何文, 所以未暇也).”

“당신 뱃속에는 성인의 마음이 있으니, 그걸 일깨우기만 하면 바로 그 마음이 존재할 것이오. 선생에게 물어볼 필요 없소. 단지 당신 뱃속에서 추구하면 되오(問, 儞一箇夫子心在肚子裡. 試一喚醒, 卽此而在, 不必問先生, 只求之儞肚裡足矣).”

“매일매일 과제가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못 하면 선생은 제대로 좀 하라고 성화를 해대니, 어찌 제 생각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答曰, 逐日功課, 若辨的不好, 先生尙要責治, 豈得任己意).”

“당신 선생은 늙은 꼰대 같소. 한번 내 말을 믿고 성인의 마음을 일깨워보시오. 성인이 될 수 있다면, 주나라 옷을 입고 은나라 수레를 타지 않아도 곧 성인이오(問, 儞先生似是老學究, 試以吾言喚起這一箇聖人心, 能做得聖人, 雖不暇服周乘殷, 便是聖人).”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사람 중에 조현명(趙顯命·1690~1752)이라는 이가 있다. 조선 후기 세도가 중 하나인 풍양 조씨 사람이다. 심양에 행차한 청나라 건륭제를 예방할 사절단 일원으로 중국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여행 중에 중국 지식인과 나눈 필담 내용을 귀록집(歸鹿集)이라는 자기 문집에 남겼다. 위 문장은 그 필담의 일부다.

조현명의 필담 상대는 공자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고시생 공육귀(孔育貴)다. 공자는 남의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자기 즐거운 공부를 하라고 했건만, 정작 공자의 후손은 고시(과거) 공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과거시험에 이미 합격해서 다시는 고시 공부 할 일이 없는) 조현명은 일갈한다. 공부의 내용을 밖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네 뱃속에서 찾으라고. 그 안에 성인의 마음이 있다고. 변명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선생이 내주는 숙제 하기 바빠서 진짜 공부 할 틈이 없어요, 엉엉. 조현명은 단언한다. 선생은 중요하지 않아.

일본의 역사학자 후마 스스무가 지적했듯이 조현명의 입장은 양명학을 반영한 것이다. 흔히 조선이 주자학 일변도 나라였다고들 하지만, 조선의 한 고위 관료는 양명학을 상당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양명학은 이른바 “무학(無學)의 통찰”을 강조한다. 길고 고된 공부 없이도, 자신의 양심만 들여다보면 통찰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기심을 걷어내고 자기 뱃속의 통찰에 집중하기만 하면, 누구나 그 즉시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양명학이 인기를 얻은 것은 너 나 할 것 없이 고시 공부로 몰려간 상황에 대한 반동이라고 할 수 있다. 출세 한번 해보고자 사람들이 고시 공부에 몰두할 때, 그런 헛된 공부 없이도 당장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이미 고시에 붙은) 왕양명(王陽明·1472~1529)이 주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왕양명의 주장은 <논어>의 다음 구절을 연상시킨다. “인이 멀리 있는가? 내가 인을 원하면, 인이 곧 이른다(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인이 멀리 있느냐고 새삼 묻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인(仁)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강조한다. 인은 멀리 있지 않다고. 당신이 인을 원한다면 인은 곧바로 여기 나타난다고. 어째서? 바로 우리 안에 인이 있기 때문이다. 인을 찾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고, 타인의 조력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당장 인을 원해라. 그럼, 인이 여기 있을지니.

이 얼마나 고무적인 이야기란 말인가. 내가 당장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니! 공자가 통치자들과 소수 제자에게 한 이 고무적인 이야기를 왕양명은 이곳저곳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어가며 뭇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말한 것이다. 신난다. 이제 고된 공부 과정이나 ‘꼰대’의 성가신 가르침 없이도 내 의견이 진리라고 버젓이 말할 수 있다. 나도 성인이니까! (아직 자기 뱃속을 들여다보지 못한) 남들은 그르고 나는 옳다고 버젓이 말하는 것은 상당한 쾌감을 동반하는 법. 그런 씹는 쾌감이 없다면, 인터넷상의 댓글 상당수가 사라질 것이다.

거리와 인터넷에 자칭 성인이 넘쳐나도 아직 태평성대는 오지 않았다. 모두가 성인이 되는 일, 그리하여 이 세상을 정의롭게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선생이 필요 없다는 가르침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선생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 왕양명은 많은 제자를 거느렸다. 그는 거대 계파의 지도자였다.

그뿐이랴. 공자는 인을 원하면, 인이 곧 “이른다”고 했지, 인이 계속 “머무른다”고 하지는 않았다. 인이 잠깐 이르게 할 수는 있어도 계속 머무르게 하기는 어렵다. 잠깐 성인이 되기는 쉬워도 계속 성인 됨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인을 원하면, 인이 곧 이른다”고 했는데, 그것은 인을 원하지 않으면 인이 이르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진수성찬도 계속 먹기가 어려운 법인데, 인을 계속 원하기가 그리 쉬운가? 인이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나만 잘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언젠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뱃속에 품어보았을 그 마음. 그러나 너무 자주 잊는 그 마음. 시인 김광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때 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