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진은 지금의 동작대교가 있는 곳으로 조선시대 한강변 나루터중 하나였다. 동작진을 지나면 남태령을 넘어 과천으로 향하는 길로 이어지며, 특히 한양에서 충청, 전라, 경상도 방향으로 가는 삼남대로 길목이었기에 먼 거리를 떠나는 사람들도 동작진을 많이 이용했다.
《춘향전》의 이 도령이 호남어사로 임명된 후 춘향을 찾아갈 때동작진을 거쳤으며, 시흥별로始興別路가 생기기 전 정조대왕이 왕래했었던 길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역시 이 나루터를 이용했던지 동작진에서 지은 시가 몇 수 전한다.
동작나루에 가을바람 일고 화순의 기억은 아득하기만 하구나.
푸른 대나무 속 관청이 있고 국화꽃 앞에 서실은 있네.양안을 따라 멀리 가야 하건만
배는 천천히 돌아 느리기만 하구나.
여행이야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나 새해부터는 힘써 행할 일 생각하네.
- 다산 정약용,
동작도출품작은 동작진의 풍광을 한양 쪽에서 부감시로 바라본 모습이다.원경에 자리한 산들은 좌측 청계산, 중앙 관악산, 그리고 우측에는삼성산으로 여겨진다. 청계산 앞에 그려진 낮은 산은 우면산쯤일테다. 화면 중앙 관악산 앞으로 양 어깨를 펼친 모습의 산은 지금은 서달산으로 불린다.
이 곳은 선조宣祖의 조모인 창빈 안씨의 묘소가 자리한 곳으로 현재는 국립서울현충원이 들어서 있다.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포근하게 산이 감싸는 형국이어서 명당의 조건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강변에는 이곳을 왕래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을 알려주듯 여러 척의나룻배들이 정박해있다.
강 건너 나귀 탄 선비와 동자의 뒤로 나 있는 길이 바로 과천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리고 화면 하단 앞뒤로 시종이 따라나선 한 선비의 무리가 강을 건너려는 듯 사공을 부르고있다. 화면 중앙에는 마을이 보이는데 모두 기와집들로 빼곡하다. 이마을을 둘러싼 서달산은 야트막한 산으로 실제로는 작품에 표현된것처럼 높지는 않다.
이는 작품의 주제인 동작진의 모습을 더욱 확대하고 강조하고 싶었던 겸재의 의도인 셈이다작품은 고운 비단 위에 강렬한 필선보다는 부드럽고 섬세한 필치를가해 차분한 느낌을 주면서도 강변의 경치를 맑게 선염해 산뜻하다.피마준으로 산을 부드럽게 쓸어내려 양감을 주고 주변을 둘러싼 경물들은 짧은 선으로 꼼꼼하게 묘사했다.
이러한 겸재의 화풍을 따랐던 화원 방호자 장시흥張始興, 1714-?의 작품 중 동작진의 모습을 그린 것이 전한다. 겸재는 너른 광각을 한 폭에 좁혀 그렸지만 방호자는 배에서 내려 과천으로 가는 길을 더욱 확대해 그렸다. 같은 풍경이라도 다른 해석을 갖고 풍경을 바라본 두 화가의 차이점이 비교해 봄직하다.겸재 정선에게 있어 한강 풍경은 특별히 화흥을 돋구는 주제였던 듯하다. 1740년 그의 나이 65세 경부터 양천현의 현령으로 발령받은겸재는 한강변을 승람하면서 《경교명승첩》보물 제 1950호을 비롯한 《양천팔경첩》 등 역작을 탄생시켰으니 말이다. 또한 당시 한강의 풍경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어 학술적으로도 높게평가되는 것이 겸재의 진경산수다. 겸재의 수많은 진경산수 중에서도, 특히 조선의 도성인 한양 남쪽을 떠받치고 있는 한강변 풍경을 그린 출품작 <동작진>은 겸재의 무르익은 필치와 작품세계를 그대로 대변한다참고도판방호자 장시흥, 동작촌,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