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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이중섭 작품관

이중섭 - 1954년 - 49.7☓32.3cm -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 - oil on paper

by 주해 2022. 11. 16.

2018-12-03 15:17:23

 

 

LITERATURE

 

Gallery Rho, A Climax of Korean Art History: 2017, p.49, pl.7.

Arte,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 2016, p.218.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이중섭, 백년의 신화: 2016, p.43, pl.16.

Maroniebooks, 이중섭 1916~1956: 2016, p.111, pl.32.

Dolbegae, 이중섭 평전: 2015, p.855, pl.34.

Hyunsilmunhwa, 이중섭 편지: 2015, p.192.

Sigongsa, 이중섭: 2000, p.97, pl.59.

Kumsung Publishing, 한국근대회화선집-洋畵7 이중섭: 1990, p.91, pl.20.

JoongAng Ilbo, 李仲燮展: 1986, pl.25.

 

EXHIBITED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이중섭, 백년의 신화: 2016.6.3-10.3.

 

작품설명

이중섭 회화예술의 신화에서 대표 걸작으로 뽑힌,유화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이중섭의 회화예술은 곧 한국 근현대사의 표징表徵이중섭이 살다간 20세기 전반과 중엽은 우리 역사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와 해방 후 남북 간의 전쟁을 겪은 참담한 시기였다. 이중섭은 다른 누구보다 1950년대 상흔을 짧은 기간 몽땅 토해낸예술가였다. 세상의 갈등과 개인적 생채기를 몸부림치며 쏟은 천진무구한 화가, ‘이중섭다움’의회작품은 곧 우리나라 근현대 사회의 의미 있는 표징이 되고도 남음 직하다.이중섭처럼 시대를 심하게 앓은 화가를 서양미술사에서 찾자면 초기 자본주의 성장기인 19세기 후반의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과 같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이 떠오른다.

사회 변동에 적응하지 않았던 이들은 자기 예술과 자신이 살던 시대를 소통하기 힘들었다. 네덜란드 명문가 출신인 반 고흐가 이중섭과 가장 유사한 인간상을 지녔다. 강렬한 터치와 채색의 반 고흐 회화는 유럽 초기 자본주의 형성에 따라 여러 모순이 드러나던 시대를 한 인간으로 깊이 천착했던 결과이다. 대향 이중섭大鄕 李仲燮, 1916-1956의 고향은 평안도 평원군平原郡 조운면朝雲面 송천리松千里이다. 아침 구름이 피어오른다는 의미의 ‘조운산’ 기슭, 송림이 어울린 동네라는 지명만 보더라도 낭만적 공간이 그려진다.이중섭은 그같이 들과 강, 그리고 구릉지 솔밭이 전개된 풍요의 땅,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다.이중섭은 일제강점기 미국 유학파 임용련이 미술교사로 있던 오산고보를 다녔다.

졸업 후에는 동경의 문화학원 미술과를 수학했다. 일본유학을 통해서 서구 신사조를 만났고, 회화 형식의 자양분을 얻었다.1930년대 일본 신진미술계는 고전주의적 사실주의나 인상주의적 경향의 아카데미즘에서 벗어나, 20세기 초 유럽의 야수파·표현파·입체파·추상파·초현실파 등의 모더니즘 수용에 적극적 이었다.이중섭은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당시 동경 미술계의 전위, 아방가르드라 할 ‘자유텐自由美 術家協會’에 참여했다. 

신사조의 영향 아래 이중섭의 회화는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보다 감정 위주의 내적 욕구나 흥취를 쏟아내는, 형상의 단순화와 대담한 색감의 표현주의 쪽으로 기울었다. 이중섭은 두 가지 기법을 중심으로 개성적 회화 형식을 성취했다. 한 유형은 연필, 펜촉, 나무나 금속의 뾰족한 도구를 사용한 선묘 그림이고, 또 다른 유형은 유채 물감으로 너른 색면을 구사한 붓 그림이다.유학을 마치고 정착한 원산 시절, 1946년 11월 큰아들의 죽음은 이중섭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겼다.전쟁 기간 월남한 이후 헤어져 살았던 부인 마사코 이남덕과 태성·태현 두 아들에 대한 연민에 처절하게 집중했다. 이중섭이 유난히 발가벗은 아이들을 천진한 표정으로 그리고, 맨몸들을 뒤엉켜 그린 화면구성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삭힌 듯하다. 이중섭은 언젠가 동경의 가족에게 보낸 그림편지에 “예술은 무한의 애정표현이오. 참된 애정으로 차고 넘쳐야 비로소 마음이 맑아지는 것이요.”라고 썼다.그 ‘무한의 애정표현’은 가족을 담은 그림편지나 은지화의 아이들 선묘 그림에 여실히 표출된다.마음이 맑은 영혼의 회화예술은지화는 이중섭 회화의 한 브랜드로 꼽힌다. 담배 곽의 속지인 은박지를 펼쳐 날카로운 연필이나 못으로 긁어 잔선질을 반복한 후, 짙고 굵은 선을 그어 마음에 드는 형상을 잡았다. 은박지 화면에 마치 고려청자 상감象嵌 기법처럼 그은 선묘에 물감을 덧칠해 이미지를 선명하게 했다. 은지화 속 아이들은 13세기 고려시대 상감청자 무늬 가운데 포도 넝쿨에 달린 아이들과도 상당히 닮은 모습이다.

여기서 모더니즘을 한국적 전통형식으로 풀어낸 이중섭다운 개성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이나 가족 관련 소재와 더불어, 이중섭 회화예술의 진수는 소 그림이다. 1930~40년대 유학 시절부터 이중섭 그림의 주요 화제는 소였다. 소는 이중섭의 분신이라 일컬어질 정도였다. 수화 김환기의 표현을 빌자면 ‘중섭이 형은 용한 사람’이라거나, 황소의 ‘애린의 눈동자’는 이중섭의 자화상 이랄 만큼 그 순정의 심상과 삶의 역정을 떠오르게 한다. 우짖거나 싸우거나 움직임이 큰 소의 표정은 30대 이중섭의 왕성한 열정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려니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경험했던 한국인의 민족적 처지와도 부합한다. 이중섭의 소 그림이 20세기 우리의 민족 현실이 갖는 응어리, 불안감 혹은 격정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고구려 고분벽화의 청룡이나 백호상의 기개를 되살려낸 듯하다.

이중섭은 타고난 대로 맑은 영혼의 순수함을 유지했다. 개인전의 실패로 받은 타격 이후에는 자학하며 밥을 거부한 거식증세를 보였고, 정신과 진료를 받는 등 본인의 아픔을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세월의 상처를 그토록 껴안았던 이중섭을 포용하지 못했다.마침내 이중섭은 적십자병원에서 무연고 시신으로 세상과 등졌다. 나이 40세였다.이중섭의 회화 기량을 뽐내는 명품 대표작이 이번 서울옥션에 출품된다. 종이에 유채의 붓 그림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이다.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는 통영의 새봄이 이중섭에게 선물한 듯하다.이중섭이 그 인생의 무게를 덜어내고 이중섭 본연의 천성을 읽게 해주는 그림이어서 그런 생각을 들게 한다.

이중섭 그림으로는 〈흰 소〉(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와 더불어 대작에 해당하는 편이다.

새로운 신화를 쓰게 한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선묘 그림과 더불어 이중섭은 1950년대 중반 통영 시절 유채화 붓 그림을 즐겼다. 〈흰 소〉를 비롯한 유화 소 그림들, 〈달과 까마귀〉, 〈부부〉, 〈길 떠나는 가족〉 등이 그 좋은 사례로 꼽힌다. 격정적이미지의 이들 작품과 달리,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는 부드러운 감수성을 쏟아낸 점이 유난하다.이중섭이 타고난 대로, 본디 자연인의 성정性情을 고스란히 쏟아낸 걸작이다.〈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에는 화사하고 싱그런 봄 정경이 가득하다. 봄을 지독하게 탓을 30대 후반의 이중섭에게 통영의 봄은 그만큼 모든 상처를 덮어준 듯하다. 종이에 유화로 그린 이 작품은 그동안 ‘벚꽃과 새’라는 제목으로 불렸으나, 유심히 살펴보면 벚꽃이라기보다 핑크빛 꽃잎과 함께 자란연두색 새싹들이 복사꽃을 빼닮았다. 이 작품은 지난 2016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의 『이중섭, 백 년의 신화』 전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전시 중 시행한 관람객 대상 앙케트에서 ‘유화 작품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꼽힌 적이 있다. 자신의 내면을 동일시한 소, 지독히 사랑하던부인과 아이들 소재의 그림에 앞서, 이중섭 회화예술의 신화에서 새로운 신화를 쓰게 한 대표 걸작 으로 등극한 것이다.많은 이들을 공명시킨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는 유난히 생명이 충만한 봄내음을 가득 담은 색면 유채화이다.

도화가 만발한 가지에 흰 비둘기가 사뿐히 내려앉자, 꽃잎이 땅으로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을 스틸로 포착한 그림이다. 꽃가지가 출렁이자 가지 안쪽에 앉아 있던 청개구리 한 마리가 놀라 움츠린 표정을 짓는다. 그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장면은 마치 옛 그림의 화조화를 현대 감성으로 재해석한 듯하다.배경에는 분홍빛 바탕에 푸른 연녹색이 감돈다. 화사한 색감의 붓질은 여전히 거칠지만, 찬바람을 물리친 남도의 따스한 봄 서정을 가득 품은 파스텔톤이다. 철저하게 자기 가족과 자신의 가슴팍에서 전율하던 에너지를 쏟은 작품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어찌 보면 송천리에서 태어난 이중섭 본연의속내는 오히려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처럼 맑디맑은 심상心象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인간 이나 사회현실 같은 세속의 인연을 털어내고 이중섭은 그토록 자연에 동화되고자 했던 것일까.

이 태 호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서울산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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