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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인쇄소 소년의 호기심이 3500년 전 수수께끼 풀었어요......‘길가메시의 꿈’과 조지 스미스

by 주해 2022. 12. 11.

‘길가메시의 꿈’과 조지 스미스

지난 3일 이라크 정부가 걸프 전쟁(1990~1991) 때 미국⋅일본⋅네덜란드 등이 약탈했던 이라크 유물 1만7000점을 돌려받았다고 밝혔어요. 이번에 제자리를 찾는 유물 대부분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연방법원은 미술품 회사 하비로비가 가진 점토판 ‘길가메시의 꿈’을 이라크에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어요. 35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의 꿈’은 가로 15.2㎝, 세로 12.7㎝ 크기의 작은 점토판이에요. 이 점토판에는 현존하는 서사시 중 가장 오래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가 새겨져 있고,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와 비슷한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미국으로 불법 반입된 이 점토판을 하비로비가 구입해 전시해왔지요.

길가메시의 꿈은 기원전 25세기~기원전 7세기 존재했던 고대 국가 아시리아의 마지막 왕 아슈르바니팔의 왕궁 대도서관 터에서 출토된 점토판인데요. 수천년 전 만들어진 점토판과 여기에 새겨진 서사시는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을까요?

미국 이민세관집행국(ICE)이 최근 공개한 고대 유물 ‘길가메시의 꿈’ 점토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알려진 ‘길가메시’의 내용 일부가 새겨져 있다./AP 연합뉴스

◇독학으로 쐐기문자를 해석했어요

아시리아가 멸망한 후 길가메시의 꿈은 2000년 동안 땅속에 묻혀있었어요. 1850년대 호르무즈드 라삼 등 영국 고고학자들이 점토판을 발굴해 런던으로 옮겼는데요. 잠들어 있었던 서사시가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영국인 조지 스미스(George Smith·1840~1876)의 호기심과 열정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고고학자가 아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메소포타미아의 아시리아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4세 때부터 인쇄소에서 지폐 조판공으로 일하며 점심시간에는 대영 박물관을 찾아가 이라크 북부 모술 근처에서 출토된 쐐기문자 서판을 연구했어요.

호르무즈드 라삼을 비롯해 다른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온 수십만 장의 점토판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것이 많았어요. 스미스는 이 쐐기문자를 독학으로 해석해 아시리아 제국의 사료를 번역하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대홍수’ 기원을 찾으려 이라크로 떠났어요

1872년 12월 3일 런던 성서 고고학회에서 스미스의 강연이 큰 주목을 받았어요. 스미스는 아시리아 토판에 “신들이 대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파괴했지만, 한 남자가 미리 커다란 배를 만들어 온갖 동물을 태우고 긴 항해 끝에 살아남았다”는 내용이 있다고 발표했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와 비슷한 이야기가 담긴 것에 많은 사람이 놀랐어요. ‘대홍수 이야기는 언제부터 나온 것인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기 시작했죠.

그는 대홍수에 관한 나머지 기록들을 직접 찾고 싶었어요. 영국 신문사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스미스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기로 합니다. 1873년 1월 스미스는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이라크로 떠났습니다. 스미스는 이라크 북부 모술과 주변 마을에서 일꾼을 고용하고 오래전 영국 고고학자들이 파놓았던 구덩이를 이어서 발굴하기 시작했어요. 발굴 5일 만에 스미스는 홍수 이야기의 누락된 부분이 포함된 서판을 발견했어요. 이 서판에는 곡식⋅동물 등을 큰 배에 실으며 대홍수에 대비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죠. 이 발견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1면을 장식하면서 전 세계에 조지 스미스라는 이름을 알립니다.

◇서사시의 핵심 내용을 찾았어요

스미스는 한 달 동안 384개의 점토판을 발견했어요. 현지 관리들의 반대로 다 가지고 올 수는 없었지만, 꽤 많은 유물을 런던으로 갖고 왔어요. 점토판을 분석한 결과 대홍수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일부였어요. 그는 이어지는 본문을 재구성하면서 길가메시 서사시의 핵심 내용을 찾았어요. 영웅 길가메시가 동료 엔키두와 함께 악마 훔바바를 물리치기 위해 삼나무 숲으로 모험을 떠나는 여정이 서사시의 큰 흐름이었죠.

모험을 떠난 길가메시가 황소를 제압하는 모습을 담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입니다./위키피디아

그의 발견 덕분에 대영 박물관의 관람객 수도 급증했다고 합니다. 1876년 3월 대영 박물관의 지원으로 스미스는 다시 아슈르바니팔 대도서관의 나머지 부분을 발굴하기 위해 이라크로 갔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8월 19일 그는 병에 걸려 36세 나이에 눈을 감았어요.

그의 고고학에 대한 열정 덕분에 이라크 지역에서 번성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이해와 학술적인 발전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라크의 유물들이 영국으로 반출돼 대영 박물관에 전시되는 결과를 가져왔답니다.

☞전쟁 중에도 문화재 보호하자는 국제 협약 있어요

1954년 유네스코 주도로 주요 국가들이 전쟁으로 인한 문화재 파괴를 막기 위한 협약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체결했습니다. 전쟁 중에는 건축물⋅예술품⋅유적지⋅도서 등을 우선 보호한다는 내용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은 협약을 준수해야 하고 위반하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세계 130여 국이 협약에 참여했습니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폭격하면서 고대 유적지 파괴가 우려되자 미국‧일본 등 6국 100여 명의 고고학자가 성명을 낸 일이 있었는데요. 이들은 미국에 헤이그 협약을 준수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지난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문화재를 공격 표적으로 삼겠다고 말했을 때도 국제사회가 헤이그 협약을 내세우며 미국을 비판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