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31 15: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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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에 가옥과 높다란 고목을 두고 여백의 물가를 지나 완만한 산세가 눈에 들어온다. 산수의 최소한의 부분만 소략한 갈필로 윤곽을 잡은 채 채색은 무심히 툭툭 덧대었다. 하늘의 여백 한 측에는 그림과 어울려 정갈하게 써 내려간 제시가 남아있다.避暑長廊壓水漘 더위 피할 긴 회랑 물길 압도하고秋來空曠斷游人 가을 휑한 들판엔 아무도 없네.匠心似出瀟閑館 뛰어난 기교 소한관蕭閒館, 倪瓚의 당호을 나온 듯古樹孤山絶點塵 고목에 홀로 솟은 산 속세의 떼 하나 없네.洌樵 열초그림과 같이 인물 하나 없는 황량한 풍경을 시구에 담았는데, 여기 언급된 소한관은 원말명초 화가예찬倪瓚의 당호이다.
동원董源을 스승으로 삼고 오진吳鎭, 황공망黃公望, 왕몽王蒙 등과 함께 원말 사대가로 뽑히는 예찬은 자신 만의 평원 산수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의 산수법인 강변의 예찬식 정자와 화면 중단의 강가를 여백으로 두어 상하단을 가르는 삼단형식을 취했다.화제 마지막에 쓰인 洌樵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후 지은 별호로 그의 필력 임을 알 수 있다.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 ‘열초 산수도’라는 명칭으로 이와 유사한 작품이 소장된 바, 붓놀림과 서체 등에서 유사한 필치가 확인된다. 두 작품의 크기도 비슷하며 가운데 접힌 자국으로 보아한 화첩에서 파첩돼 흩어진 그림들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만 작자에 있어 제발은 다산이 쓰고그림은 그와 절친했던 해거도인 홍현주의 솜씨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하단에 찍힌 인장 ‘매화구주梅花舊主’에서 이를 즐겨 썼던 추사 김정희, 우봉 조희룡 또한 언급된다.이처럼 그린 이에 대해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열초는 우리가 아는 다산을 지칭하는 것이며, 그와교류하며 당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언급되는 작품인 만큼 미술사에 있어 중요한 자료 한 점인 셈이다.
참고도판
열상 산수도, 개인 소장산수도, 동아대학교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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