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창작열 불태워
파울 클레가 젊었을 때 그린 〈①세네시오〉는 노인의 얼굴을 유쾌하게 형상화했다. 클레가 전신 경화증 투병 끝에 사망한 해에 그린 〈②죽음과 불〉은 칙칙한 색감에 죽음을 암시한 듯한 형상을 보인다. /스위스 바젤 미술관·베른 젠트럼 파울 클레 미술관 소장
스위스 태생 화가 파울 클레(1879~1940년)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함께 20세기 입체파 3대 작가로 꼽힌다. 그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신도 프로급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아내는 피아니스트였다. 35살 되던 해 아프리카 튀니지를 여행하고 나서 유려한 색채를 쓰기 시작한다. 장르를 넘나들고 경험이 다양해야, 새로운 작법이 탄생한다.
클레가 1922년에 그린 <세네시오>(꽃이 피는 식물 범주를 일컫는 말)는 노인 얼굴을 형상화했다. 주황, 빨강, 노랑, 흰색의 도형이 절묘하게 배치되어 입체적인 표정을 만든다. 그는 61년 평생 1만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 캔버스에 그린 것은 적고, 신문지, 판지, 천, 붕대 등 여러 재료를 사용한 소품이 많다.
그는 57세에 전신 경화증 진단을 받는다.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즘 계열의 병으로 매우 드문 질환이다. 전재범 한양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대개 처음에는 손이나 발이 추위에 노출되었을 때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손과 발끝 색이 하얗게 또는 파랗게 변하는 레이노 현상이 일어난다”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손과 발의 피부가 두꺼워지고 가죽처럼 단단해지는 경피증 증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전신 경화증은 내부 장기도 침범하여 간질성 폐질환을 일으키고, 그것으로 폐동맥 고혈압이 발생해 숨이 찰 수 있다”며 “아직까지 발생 원인을 정확히 모르며 근본적인 치료법도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클레는 몸이 굳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2500여 점을 그렸다. 발병 후부터는 두꺼운 검정 크레용과 거친 선, 칙칙한 색감으로 그림을 채웠다. 죽은 해에 그린 <죽음과 불>을 보면, 예전의 유쾌함을 찾아볼 수 없다. 해골 같은 흰색 얼굴이 중심에 있고, 입과 눈은 독일어로 죽음을 뜻하는 T, o, d로 표기됐다. 스스로 죽음을 인지한 듯하다. 클레는 6월 29일 세상을 떠났는데, 훗날 국제의학계는 그날을 세계 경피증의 날로 정했다. 클레는 그림으로 질병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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