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위해 목숨 건 토스… 망명 여성들로 처음 출전한 아프간 배구
안경 쓴 배구선수 -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달 30일 카자흐스탄과 벌인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별 리그 D조 1차전에서 상대 공격에 대비해 수비 자세를 취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아프간 여성들은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지난 1일 중국 항저우사범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별 리그 D조 2차전.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 여자 배구 대표팀의 미들 블로커 무르살 케디리(25·168㎝)가 경기 후 취재진 앞에서 “우리가 아프간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리라 믿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아프간 여성들은 2년 전 자유를 잃었다. 2021년 이슬람 강경 수니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집권한 뒤로 여성의 사회생활이 사실상 금지됐다. 남성 없이는 집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고, 중·고교 여학생들의 등교가 막혔다. 스포츠는 언감생심. 저항하던 아프간 유소년팀 여자 배구 선수가 탈레반에게 살해당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탈레반 정권은 “예전 같은 여성 탄압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에 여자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아프간을 탈출했다. 이탈리아에 정착한 여자 사이클 파리바(20), 위도즈(23) 하시미 자매는 “우리는 집 밖으로 나설 수도 없었다. 내가 계속 머물렀다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아프간 기수로 나섰던 육상 선수 카미아 유소피(27)는 이란을 거쳐 호주로 망명했다. 그는 “우리 아프간 여성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아프간을 빠져나간 여자 배구 선수들은 이란에서 훈련한 뒤 항저우에 입성한 걸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일본(세계 9위)과 경기에 나선 이들은 비장한 표정에도 이렇다 할 장면은 보여주지 못했다. 하얀색 히잡을 두르고 뛰어올라 힘껏 친 공은 비실비실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다. 그 공이 곧바로 일본의 날카로운 반격으로 이어질 때마다 아프간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일본에 세트스코어 0대3(2-25 0-25 5-25)으로 완패했다. 아프간이 일본을 상대로 득점한 총점 7점 중 6점은 일본이 서브 등에서 실수해 얻은 것이었다. 지난달 30일 열린 1차전에도 카자흐스탄(32위)을 맞아 0대3으로 졌고, 2일 열린 홍콩(69위)전에서도 똑같이 0대3으로 무릎을 꿇었다. 조 최하위.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지난달 27일 중국 항저우 훈련장에서 연습을 마친 뒤 배구공을 손가락으로 돌리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졸전에도 경기장 안은 명승부가 펼쳐지는 것처럼 환호로 가득 찼다. 아프간 선수들 분전에 관중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포기하지 않고 네트 앞에서 뛰어오르고 몸을 내던지는 아프간 ‘천사’들을 모두 한마음으로 응원했다. 아프간 여자 배구 선수들에겐 ‘나는 천사들(Flying Angels)’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이들에게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다.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보복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프간 배구팀 한 선수에게 말을 걸자 “아직 아프간에 가족이 남아 있다”면서 인터뷰를 피했다. 그러나 선수들 얼굴에는 문득문득 들뜬 표정도 비쳤다.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면서 자국 상황을 알리고, 그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설렘이 아니었을까.
이날 로가예 무하마디(21·181㎝)는 이틀 전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해 3주 휴식을 권고받았는데도 절뚝거리며 경기를 소화했다. 무하마디는 “감정이 격해져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이 경기들은 아주 중요하다”고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에 말했다. 무하마디는 ‘무릎이 아픈데 남은 경기에서도 뛸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려고 먼 길을 왔습니다. 참가한 것 자체가 기적이죠. 남은 경기도 나설 겁니다. 모든 아프간 여성, 코트에 서는 친구들과 마지막까지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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