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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조르주 루오.....“인생은 힘겨운 직업…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by 주해 2022. 12. 27.

2022.10.13

 

“인생은 힘겨운 직업…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인생은 힘겨운 직업…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인생은 힘겨운 직업 주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인간의 비참 그린 佛 조르주 루오 빈민·창녀 등 밑바닥 군상 표현 렘브란트 이후 최고의 종교화가 이중섭 등 韓 근대화가에도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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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비참 그린 佛 ‘조르주 루오’]
빈민·창녀 등 밑바닥 군상 표현
“렘브란트 이후 최고의 종교화가”
이중섭 등 韓 근대화가에도 영향

예수의 수난을 연상케하는 ‘우리는 모두 죄인이 아닌가?’(1920~1929). /조르주 루오 재단

너무 추워서 두 손을 움켜쥘 때, 그것은 기도의 동작을 닮아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1871~1958)가 그린 ‘겨울’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허리가 굽어있다. 가난한 몸짓으로 어디론가 걸어가는 동안, 나목처럼 간절한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그칠 때까지. “나는 깊이 팬 주름 속에 고통 겪는 자들의 말 없는 친구요, 문둥병 든 벽 위에 매여 있는 영원한 비참함의 넝쿨입니다… 나는 이렇게 위험한 시대에 십자가 위의 예수만을 믿습니다.”

평생 인간의 참상과 연민을 다뤄온 화가, 조르주 루오 회고전이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내년 1월까지 열린다. 루오 재단 및 퐁피두센터 소장품 200여 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100년 전처럼 전쟁과 역병의 창궐로 인간성이 의심받는 시대에 필요한 그림”이라는 설명이다. 파리 코뮌의 혼란, 파리 근교의 한 지하실에서 태어나 집 없는 자들이 거리에 나앉은 모습을 어릴 적부터 종이에 옮겼다. 빈민과 창녀, 광대…. 가장 밑바닥의 군상에서 그가 포착한 것은 고통이었다. 친구였던 평론가 앙드레 쉬아레스는 “마치 당신은 악마를 물리치려 굿하듯 그림을 그린다”고 평했다.

거리의 쓸쓸한 풍경을 담아 1912년 완성한 '겨울1'. /조르주 루오 재단
앙상한 나무 따라
오르는 막막한 길
 
외로운 한 사내는
셋방으로 돌아가
서글픈 눈물 속에
곤한 잠을 청하네
 
사랑도 꿈도 없이
어제 했던 일을
내일 또 하리라
 
앙상한 나무 따라
오르는 막막한 길

<독백> 조르주 루오 詩, 1944

구원을 향한 관심은 자연히 종교화(畵)로 이어졌고, 렘브란트 이후 가장 빼어난 종교화가라는 평가를 얻는다. 그 중심에 성서와 예수가 있다. 1920년부터 9년간 매달린 유화 ‘우리는 모두 죄인이 아닌가’는 창백한 비탄의 표정으로 벌거벗은 예수를 보여준다. 수난의 역사, 그럼에도 끊이지 않는 오랜 되풀이를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작품에 주석을 달고 요상한 질문을 하는 현학자들을 증오했다”는 루오 장녀의 증언처럼, 선명한 색채와 굵은 윤곽선의 그림은 직관적이며 강렬한 집중을 유도한다. 열네 살 때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소 견습공으로 일했던 경험에서 비롯한 화풍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제레레’(Miserere)가 있다. 1927년 완성한 58점의 흑백 동판화 연작이다. 미제레레는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라틴어로, 구약성서 시편 51:3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머니들은 전쟁을 증오한다’ ‘이제 겨우 살 만하니까 죽었다’ 같은 제목의 명료한 형상과 메시지에서 동서고금의 동변상련을 느끼게 된다. 미술사 전문가 정웅모 신부의 짤막한 해설이 전시장 캡션마다 적혀 있다. 정 신부는 “미제레레는 세계대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무수한 생명이 사라진 참혹한 현실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외친 절규이자 간절한 기도”라고 했다.

 
 
미제레레 동판화 연작에 포함된 ‘인생은 힘겨운 직업’(위)과 ‘이제 겨우 살 만하니까 죽었다’(1922). 화가가 천착한 공통 주제는 인간의 비참이었다. /조르주 루오 재단

그런 루오를 이중섭·박고석 등 한국 근대화가 역시 사랑했다. 일본에서 먼저 루오가 큰 인기를 끌었고, 유학파 등이 후속 영향을 받은 것이다. 베르트랑 르 당텍 조르주 루오 재단 회장은 “한국은 오래전부터 루오의 작품에 애착을 갖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한국 중요 예술가 간의 연결을 의미한다”고 했다. 연계 전시 ‘조르주 루오와 한국미술’을 마련해 구본웅·손상기·한묵 등의 작품 50여 점을 걸어놓은 이유다. 그러나 ‘영향’이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이들 그림은 루오의 화풍과 그다지 닮아있지 않다. 학예실 측은 “작품 대여 난항으로 서로 비슷한 그림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다소 설익은 연결이 돼버렸다.

루오가 1922년 ‘인생은 힘겨운 직업’에서 간파했듯, 역시 삶은 쉽지가 않다. 고개 숙인 마른 노인, 그 옆에 그해 제작된 다른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제목이 ‘서로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다. 구원의 유일한 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