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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전시 . 탐방 . 아트페어

“미술 안했으면 범죄자 됐을 것… 서울 어지럽히고파”

by 주해 2023. 2. 9.

“미술 안했으면 범죄자 됐을 것… 서울 어지럽히고파”

 

“미술 안했으면 범죄자 됐을 것… 서울 어지럽히고파”

미술 안했으면 범죄자 됐을 것 서울 어지럽히고파 마우리치오 카텔란 인터뷰 벽에 붙인 바나나·황금 변기 논란의 작품으로 미술계 흔들어 리움미술관 개인전도 예약 전쟁 예술은 깊고 은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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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리치오 카텔란 인터뷰]
벽에 붙인 바나나·황금 변기…
논란의 작품으로 미술계 흔들어
리움미술관 개인전도 예약 전쟁
“예술은 깊고 은밀한 자아 끌어내”
독립잡지 ‘토일렛 페이퍼’도 창간
“종이는 대체불가로 매력적 매체”

현재 동시대 미술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한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리움미술관

아트페어에 출품된 바나나 한 개, 수퍼마켓에서 파는 이 과일이 엄연한 ‘작품’으로 둔갑해 약 1억5000만원에 판매됐을 때, 이런 반응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런 사기꾼이 있나. 2019년 ‘바나나 사건’으로 일약 세계적·문제적 작가로 발돋움한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는 7월까지 그의 첫 국내 개인전이 열린다. 무료지만 2주치 예약이 전부 찼을 정도로 인기다.

카텔란의 출세작, 작품명 '코미디언'. /정상혁 기자

–바나나가 진짜 팔렸을 때 어땠나?

“그토록 열광적인 흥분은 예상하지 못했다. 미디어와 시장 모두. 심지어 미국 아침 방송 ‘굿모닝 아메리카’에도 방영됐잖나. 돌아가신 어머니도 내가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개념미술은 본래 충격을 자양분으로 삼지만, 카텔란의 바나나는 그 충격을 적극적으로 ‘돈’과 결부시켜 배가했다. 뭣도 아닌 바나나지만 접착테이프로 벽에 붙일 때 엄격한 각도까지 적시한 정품 보증서도 제작했다. 냉소든 환호든, 의미 부여와 함께 예술은 시작된다. 작품 제목은 ‘코미디언’이다.

–수많은 과일 중 왜 ‘바나나’였나?

“바나나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과일이다. 코미디언들의 영원한 베스트프렌드지. 다른 과일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바나나는 ‘캐번디시’라는 전 세계 유일 품종이라 항상 같은 모습처럼 보인다. 모두가 예술은 헛소리라고 생각하더라도 거기서 어떤 가치를 발견해 설명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예술이 무엇인지 논의의 장소를 항상 열어두는 태도가 예술의 가격보다 훨씬 중요하다.”

냉소에 기반한 기행으로 그는 미술계를 접수해왔다. 2016년 처음 선보인 ‘황금 변기’도 그중 하나다. 70억원어치 황금 103㎏으로 변기를 제작해 화장실에 설치한 뒤 관람객이 용변까지 볼 수 있게 한 조각이다. 그리고 2019년, 영국 블레넘궁(宮)에서 전시 도중 도둑맞았다. 작품명 ‘아메리카’.

2016년 처음 선보인 황금 변기 '아메리카'. 2019년 영국에서는 전시 도중 도난당하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구겐하임미술관

–이런 해프닝도 예상했나?

“도난까진 고려하지 못했다. 역시 화장실이다! 금은 100% 재활용이 가능하니 내 작품은 그들이 원하는 용도와 형태로 녹아버렸을 것이다.”

–개념미술은 흥미롭지만, 예술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예술과 헛소리는 어떻게 구분하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어디서든 헛소리를 피하기 힘들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결국 시간이 답해주겠지.”

카텔란이 자신의 경력을 빛나게 한 가장 결정적 작품으로 꼽은 '아홉번째 시간'(1999). 교황을 운석에 깔아뭉개 신성 모독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정상혁 기자

–당신의 경력을 반전시킨 결정적 작품은?

“터닝포인트는 ‘아홉 번째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운석에 맞고 쓰러진 교황 조각이다.) 1999년 시작한 순회 전시에서, 언론이 비로소 내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물론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바르샤바에서는 갤러리 디렉터와 국회의원 두 사람이 해임되긴 했지만. 그들은 바위를 제거하고, 쓰러진 교황을 바로 세우려 했다.”

정식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비전공자다. 트럭 운전을 하던 부친과 청소부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안실 직원부터 정원사에 이르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간호사로 일하던 어느 날, 갤러리 창문 너머로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그림을 보게 된다. 그런 그를 갤러리 주인이 안으로 불렀다. “미술에 관심 있느냐”며.

–무엇이 당신을 미술로 이끌었나.

“예술은 우리의 가장 은밀한 자아를 드러내는 미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 갤러리 앞에서 문을 밀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나는 범죄자가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화장실에서 ‘아메리카’(황금 변기)를 훔친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다.”

–한국에만 수만명의 미대생이 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예술의 길은 외로우며 반드시 교육을 통과해야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를 포기할 수 없다면, 우선 유명해지고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삼지 말라. 예술을 성찰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때, 당신의 혼잣말을 정리할 수 있을 때 성공한다.”

2010년 카텔란이 창간한 독립 잡지 '토일렛 페이퍼'. 즉각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를 제시하며 화장실 휴지같은 잡지를 지향한다. /토일렛 페이퍼

잘나가던 그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이후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더는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5년 뒤 컴백했다. 그는 “오직 바보들만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며 “적절한 순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부터 독립 잡지 ‘TOILET PAPER’도 발행하고 있다. 화장실 휴지처럼 가깝고 쉽고 독특한 이미지가 잔뜩 담긴 책이다. “내게는 다른 어떤 매체도 뛰어넘지 못할 종이에 대한 페티시가 있다. 그리고 잡지 제목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가 먹고 남은 존재이고, 화장실은 우리 내면의 장소다.”

–당신이 경험한 서울은?

“몹시 단정한 환경이 나를 자극했다. 뭔가 어지럽히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내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