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3 21:58:37
조선 초기 회화는 500여년의 시간동안 세월의 풍파와 임진왜란을 포함한 여러 전란 속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발해 귀하게 전해졌다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긴 시간동안 작품을 거쳐간 여러 소장가들이 습기와 햇볕을 피하려 노력했고 전란이 나면 단촐하게 꾸린 살림살이에 실어 피난했음에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선조들의 작품을 감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여기 선조들의 손때와 더불어 고고한 필력으로 하여금 그 자태를 뽐내는 조선 초기 회화 한 점을 소개한다.
대각의 편파구도를 취한 채 화면의 반 이상을 여백으로 남겨 주제의 부각을 꾀한 조어도 이다. 화면 우측을 아우르는 거목을 등진 채 고기잡이하는 인물들을 면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인물들 중 한명은 지렛대에 걸친 밧줄에 잔뜩 힘을 주어 그물을 끌어올리고 또 다른 한명은 뜰채를 뒤로 진채 무언가 지시하는 모양새다. 그물은 아직 수면위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팽팽한 줄과 무겁게 가라앉은 그물의 모습에 인물들은 흥분과 기대감에 밧줄을 더욱 힘주어 끌어 올렸을 터, 촌부들의 순박하고 꾸밈없는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긴 듯 하다.
편파구도를 취하며 여백으로 하여금 주제를 부각시키는 구성법은 조선 초 안견의 작품에서부터 나타난다. 명나라 15세기 후반에 유행하기 시작한 절파화풍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16, 17세기까지 많은 문인화가들이 절파풍의 명작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중 유명한 이로는 강희안, 강희맹, 이경윤, 이징, 김명국 등이 있다. 이중 강희안의 경우 1455년 북경에 다녀와 절파풍을 수용하면서 후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위 작품 역시 비슷한 15세기 즈음에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대표적인 화가들의 작품 속 표현법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먹의 농담, 그리고 필획의 굵기를 조절한 수지법과 기물의 표현에 있어 시대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으며, 아직 진경화법이 자리 잡기 이전 중국의 고사도에서 가져온듯한 전형적인 구도 등이 그러하다. 또한 인물표현에 있어 필획에 변화로 단조롭지 않은 의습선과 붓으로 콕콕 찍어 표현한 인물의 이목구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강희안, 이경윤의 작품에서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물받침과 지렛대를 그린 직선적인 필획도 당대 몇몇 회화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도안의 구성과 구도의 유사성으로는 한국회화대관에 수록되어 있는 정세광의 그림을 들 수 있겠다.
작품은 가운데 접힌 자국으로 보아 화첩양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림의 왼편이 일부 소실된 것으로 보이고 작품의 요결부위가 일부 결손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전하는 채색이 그대로이고 먹감의 강약이 완연한 점은 이 작품이 지닌 큰 장점이라고 할 것이다. 좌측 상단에 적혀 있는 겸재, 원백이라는 수결과 낙관은 후대에 찍은 것으로, 조선 초기회화 연구가 미흡했던 어느 때 누군가의 실수로 범해진 일이라 사료되어의미를 두기 어렵다.
조선 초기 회화는 현재 전하는 작품의 수가 적고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은 대부분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물론 작품의 수결과 낙관으로 하여금 누구의 작품인지, 제작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파악이 어렵지만 도안의 표현법과 작품의 재질, 필력의 우수성으로 하여금 후학들에게 심도있는 과제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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