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장례식’ 늘고 있다
황송희씨는 아버지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렀다(왼쪽). 황씨 조카들은 장례 기간에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로 비행기를 접어 할아버지의 관에 넣었다. 오른쪽 사진은 꽃잠을 통해 무빈소 장례식을 치른 한 유가족이 입관식 전에 마지막 인사를 적는 모습.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는 가족과 친지만 부르고, 조의금도 받지 마라. 시신은 조용히 화장해 나무 밑에 뿌려다오.” 우종옥(83) 전 교원대 총장은 얼마 전 자식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우 전 총장은 부조(扶助) 위주의 장례 문화가 상주와 조문객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고 말한다. “고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사회적 관계 때문에 조문을 오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상주도 이런 조문객들을 상대하느라 고인을 제대로 애도할 시간을 못 가지고요. 내 장례식에서는 나를 정말 사랑했던 이들만 모여 조용히 나를 떠나보냈으면 합니다.”
가족장, 하루장(빈소를 하루만 차리는 것), 무빈소 장례식(빈소를 차리지 않고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 등 장례 절차를 간소화한 '작은 장례식'이 늘고 있다. 소수의 조문객만 모여 조용하게 장례를 치르고, 불필요한 부대 비용도 줄이자는 것이다.
"유족 중심 장례 문화 벗어나야"
장례는 망자를 위한 의례다. 하지만 정작 고인보다 유족 중심인 게 한국 장례 문화의 현실. 화려한 식장과 입구에 빼곡히 들어선 조화는 유족들의 세를 과시하는 수단이 된다. 조문객들은 식장에 조의금을 얼마나 내야 체면이 살지 고민하고, 유족들은 조문객들의 숫자를 고인의 품격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필도 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언젠가부터 장례 문화가 고인을 추모하는 의식으로서 의미를 잃어버렸다. 허례허식 가득한 장례식장에 상주와 조문객만 남고 고인은 지워졌다"고 했다.
장례식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장례 및 장묘에 드는 비용은 평균 1380만8000원이었다. 이 중 장례식장 사용료, 음식 접대비 등 장례에 드는 비용이 1013만8000원에 달한다.
작은 장례식을 선택하는 이들은 기존의 장례 관습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조용히 고인을 추모한다. 천편일률적인 장례식장 음식 대신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다과를 준비하고, 고인이 아끼던 물품들을 모아 조촐한 추모식을 곁들이기도 한다.
직장인 황송희(42)씨는 작년 12월 돌아가신 아버지의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렀다. 황씨 가족은 고인의 부고를 가족, 친지 외에 극소수 지인에게만 알렸다. 아버지도 생전에 가족장에 동의한 상태였다. "문상객 접대보다 아버지 마지막 길을 편안하게 보내드리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좋아하셨을 거예요." 황씨 조카들은 장례 기간 동안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로 비행기와 학을 접어 할아버지의 관에 넣었다.
생전에 장례 간소화 당부하기도
자신이 죽은 뒤 장례 절차를 미리 정해두는 '사전 장례의향서 쓰기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생전에 장례 방식, 부의금을 받을지 여부, 염습·수의·관 등을 미리 정해줘야 자식들이 부담 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한국골든에이지포럼은 2013년부터 사전 장례의향서 쓰기 캠페인을 벌여 지금까지 총 6만여장의 사전 장례의향서를 배포했다. 이광영(83) 한국골든에이지포럼 공동대표는 "좋은 수의, 비싼 관을 쓴다고 고인의 마지막 길이 편안한 건 아니다. 오히려 남은 자손들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했다. 이 대표도 '부고를 내지 마라. 염습, 수의 등은 모두 생략하고 시신은 화장해 산 깊숙이 뿌려라'는 취지의 장례의향서를 남겨둔 상태다.
장례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작은 장례식만을 전문으로 하는 상조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2017년 창업한 장례 문화 스타트업 꽃잠은 가족장, 하루장, 무빈소 장례식 등 작은 장례식에 초점을 맞췄다. 유족의 의사에 따라 수의나 음식, 발인식도 생략한다. 코로나 여파로 조용히 치르겠다는 유족이 많아지면서, 올해 3월 장례 문의가 작년 동기 대비 열 배 증가했다고 한다. 유종희 꽃잠 대표는 “3일장 중심의 획일적인 장례 문화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떠나보내려는 고객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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