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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문화 . 시사

월북·탈북·일흔에 英이주… 한 탈북민의 굴곡진 삶英가디언, 故김찬숙씨 사연 보도

by 주해 2022. 12. 12.

2021-08-28 10:27:16

 

6·25때 월북, 평양서 의사로 일해南출신 차별에 광산촌으로 쫓겨나1998년 남한으로… 70대에 영국행“특별한 삶 살다간 진정한 생존자”

영국에 정착해 살다 최근 사망한 탈북 여성 시실리아 김(한국명 김찬숙)씨. 서울에서 태어난 김씨는 월북, 탈북, 영국 재정착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보도했다. /영국 가디언 홈페이지

“수많은 탈북민의 스토리 중 가장 독특하고 진실하다. ‘진정한 생존자의 얘기’다.”

일제강점기에 서울에서 태어난 뒤 6·25 때 월북-탈북-남한 정착-영국 재정착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최근 사망한 탈북 여성의 스토리가 영국 일간지에 소개됐다. 한국학을 전공한 오웬 밀러 런던대 교수는 24일(현지 시각) ‘가디언’지에 최근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시실리아 김’의 부고를 실었다. 한국 이름은 김찬숙.

밀러 교수에 따르면 김찬숙씨는 1930년대 서울에서 태어났다. 광복 이후 성신고등여학교에 진학했지만 얼마 안 가 전쟁이 터지며 북한이 서울을 점령했다. 당시 서울에는 정치공작대로 내려온 김일성대 학생들이 젊은이들에게 “인민군에 들어오면 ‘무상교육·무상의료’를 보장해준다”며 입대를 선전·강요했다고 한다. 김씨도 대학에 갈 목적으로 인민군에 입대, 주로 부상병 치료를 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군과 미군 출신의 전쟁 포로들도 치료했다고 한다.

5년간의 군 복무 후 평양의학대학에서 공부한 김씨는 평양 임상병원에 내과 의사로 배치돼 일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로당파를 숙청한 북한은 전후 남한 출신들에 대한 차별 정책을 실시했다. 여성 의용군들도 ‘적대 분자’ 취급을 당하면서 감시를 받거나 숙청당했다.

김씨와 딸도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1973년 평양에서 추방돼 함경북도 샛별군의 광산촌으로 쫓겨갔다. 그는 시골에서 잠시 다시 의사로 활동할 기회를 얻은 적도 있지만, 극심한 식량난이 이어지면서 집에서 만든 술을 암시장에 팔아 생계를 근근이 유지했다. 하지만 한계에 부딪힌 그는 1998년 딸과 손녀와 함께 중국으로 탈북했다. 이후 김씨는 가족과 함께 고향인 한국에 돌아왔지만 적응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70대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2000년대 중반 영국에 정착했다. 영국은 2004년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이후 탈북자들을 인도주의 차원에서 수용했다. 김씨도 영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난민 지위를 인정한 이들에게 교육과 의료, 주택 수당, 취업 수당 등 혜택을 자국민과 똑같이 주는 데다 자녀들 영어 교육 차원에서도 유리하기 때문에 많은 탈북민들이 선호한다고 한다. 현재 영국에는 약 500여 명의 탈북민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거주 한 탈북자는 “처음에는 언어 장벽 때문에 정착이 쉽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한국보다 탈북자에 대한 차별이 없다. 북한이든 남한이든 ‘코리안’으로 인식된다”고 했다.

한국학 연구 도중 김씨를 만나 오랜 시간 알고 지냈다는 밀러 교수는 “20세기 초·중반에 태어난 대부분의 한국인이 식민 통치와 전쟁, 분단을 겪었지만, 고인의 삶은 좀 더 특별했다”며 “김씨의 삶을 꿰뚫는 실마리는 자존심과 결단력이었다. 그는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살아온 길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