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의 신체드로잉은 ‘그리기’ 행위에 대한 본질을 탐구하며 시작됐다. 1967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동료 작가들과 당시 최신의 서구 미술 이론의 흐름을 연구하며 스터디 그룹을 운영했다.
1969년 12월에 평론가 김복영이 합류해 조금 더 결속력 있는 조직으로 발전해 ‘S.T 조형미술 학회’(이하 S.T)가 출범했다. S.T를 이끌고 이벤트를 주도한 이건용은 해프닝의 우연성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논리를 강조하며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영향을 받아 행위를 사건화하는 ‘로지컬 이벤트’를 선보였다. 이건용은 이벤트 참여 이전부터 신체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1971년 발표한 <신체항>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며 이러한 행위 예술은 당시 일본에서 작가이자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던 이우환의 담론과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한스 하케Hans Haacke등으로 대표되는 서구 개념미술 사조의 철학을 기반으로 전개됐다.
S.T 그룹은 멤버들은 정기적으로 그들의 작품을 전시 했으며, 이건용은 제한된 조건 속에서 자신의 신체성이 적극 개입된 회화 방법을 1976년 서울 출판 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ST》전시에서 선보였다. 그의 총 아홉 가지의 ‘신체드로잉’으로 불리는 회화 방법론 중 일곱 가지의 ‘그리기의 방법The Method of Drawing’을 발표했다. 그는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이론에 신체를 결합해 행위와 드로잉이 접목된 독자적 드로잉 이벤트를 선보이며, 이전까지 사건으로써 논리적 행위를 제시하던 퍼포먼스에서 나아가 신체의 움직임을 평면에 기록하는 회화 작업으로 확장했다.
<신체 드로잉> 연작은 기본적으로 화면의 위치와 신체의 조건에 따라 드로잉의 결과가 달라지는 작품으로 드로잉 시작 전 모두 다른 신체 위치를 설정한 후에 진행했다. 1976년 처음 선보인 <신체드로잉 76-1>은 화면에 뒤에서 앞으로 팔을 뻗어 그 팔이 닿는 데까지 선을 그어나가 완성시켜 신체적 조건을 활용한 선긋기를 시도했다. 큰 나무판을 세우고 작가의 키와 비슷하도록 자른다. 작가는 나무판 뒤로 가서 팔을 뒤에서 앞으로 넘겨 선을 그을 수 있는 만큼 긋는다. 그리고 선이 그어진 만큼 나무판을 톱으로 잘라내고, 다시 나무판 뒤로 가서 팔을 넘겨 선을 긋는데 나무가 잘려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 전보다 더 큰 폭으로 선을 그을 수 있다. 이때 작가의 눈은 시각적으로 완전히 차단되며, 드로잉은 작가의 신체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수행된다. 그 신체의 흔적을 잘라내고 작가는 다시 합판 뒤에서 팔을 뻗어 필선을 남겼다.
행위가 반복될수록 합판 높이는 낮아지고, 작가의 가시성 역시 확보된다. 선을 반복해 위아래로 긋고,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다시 같은 방법을 반복한다. 작가의 드로잉도 그 주어진 조건만큼 균질해져 신체의 조건에 따른 차이를 드러낸다. 출품작도 모티프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됐는데 과거 1976년 선보인 신체드로잉 76-1의 개념에서 출발해 화면 뒤에서 팔 뻗어 붓질을 이어나가,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신체의 궤적을 드러낸 작품이다.
반복적으로 선을 긋는 신체행위가 주변 공간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하나의 풍경인 ‘Bodyscape’를 형성하며 흘러내리는 물감의 성질이 고스란히 캔버스 화면에 드러난다. 손이 닫는 영역까지 펼쳐진 붓의 스트로크는 작가 자신의 팔이 닿는 영역까지 채색되는데, 이러한 행위를 인지한 감상자는 마치 화면 뒤에 작가가 서 있었을 것 같은 존재를 인식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