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2 12:23:41
낙화암은 경상남도 합천에 있는 가야산의 명소 중 하나로 기암괴석과 그 사이로 흐르는 폭포가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가야산은 조선 8경에 속할 만큼 영남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암산이며, 그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崔致遠, 857-?이 말년에 은둔하던 장소로 그가 지은 시인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 전한다.
狂奔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미친 듯 바위에 부딪치며 산을 보고 포효하니,지척 간의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려워라.
시비하는 소리가 귀에 들릴까 저어해서,일부러 물을 흘려보내 산을 감싸게 하였다네.
출품작은 진경산수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담아낸 낙화암의 풍경이다.
작은 화폭이지만 산세의 웅장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대담한 구도를 비롯해 절대준과 부벽준으로 표현한 과장된 암석, 무수한 미점으로 그려낸 토산, 골짜기 사이사이에 자리한 수목까지 겸재의 농익은 필치가 돋보인다.
옅은 채색을 부드럽게 풀어내 산뜻하면서도 맑은 풍경을 선사하고 있으며, 근경의 널찍한 바위에 낙화암落花巖이라고 적어 이곳이 실경임을 밝히고 있다.겸재는 청하현감을 지내던 1734년에 당시 삼척부사로 있던 절친한 벗인 사천 이병연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영남지역의 풍경을 사생했다.
사천이 겸재의 그림에 제를 한 것이 종종 발견되는데, 이 작품도 그의 화제가 같이 전하고 있다.
謙齋筆到幽深之境 多作水流花開閴然無人
意思甚好 千載之下 恨孤雲作閙
겸재는 필의가 그윽하고 심오한 곳에 도달할 때 ‘물 흐르고 꽃 피며 인적 하나 없는’ 광경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내용이 참 좋다. 천년이 흐른 뒤 고운孤雲, 최치원이 떠들썩하게 시끄럽다 한 것이 아쉽다.
이 작품을 보고 최치원의 시구를 떠올리며, 그가 이 곳을 시끄럽다고 표현한 것이 아쉽다는 자신의 감상을 담아낸 것이 흥미롭다. 좌측 하단에는 호인 ‘백악하白嶽下’의 주문방인과, 자인 ‘일원一源’의 백문방인을 찍어 그의 화제임을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또 다른 화제가 같이 전하며 작품과 내용이 잘 어우러진다.
花飄無迹石巉巉 沉作紅流高罥杉
怊悵鷄林黃葉日 扶江亦有落花巖
날린 꽃잎 흔적 없이 바위만 우뚝한데,
그윽히 잠긴 홍류동 계곡에 높이 삼나무 걸렸네.
쇠락한 계림에 낙엽이 쓸쓸 했는데,
금강엔 또한 낙화암이 있다네.
이 화제의 좌측 하단에는 ‘석계산인石溪散人’이라는 백문방인이 찍혀 있어 글쓴이를 짐작케 한다.
겸재가 청하현감으로 부임하는 날 그와 이웃하며 친분을 쌓았던 관아재 조영석趙榮祏, 1686-1761은 겸재의 진경 사생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며 글을 썼던 적이 있는데, 석계산인이 조영석의 또 다른 호이기 때문에 언젠가 그가 이 작품을 보고 써내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겠다.
청하현감 시절은 겸재의 필력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던 시기로 <성류굴>1734, 간송미술관 소장, <내연삼용추>173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같은 뛰어난 작품들이 그려졌다. 출품작 또한 숙달된 필력뿐만 아니라 영남지역의 실경이라는 점, 사천의 화제가 같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됐던 것으로 여겨지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가야산의 낙화암 실경을 처음 선보이는 바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작품이 보관된 오동상자에는 뛰어난 감식안을 지녔던 위창 오세창이 ‘정겸재산수鄭謙齋山水’, ‘이사천평李槎川評’이라 적어두어 그들의 진적임을 견고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