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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술/서양 미술사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 : 흑사병 : 1516~18년 : 나무판에 유채와 템페라 : 75×56㎝ :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by 주해 2022. 12. 16.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 흑사병, 1516~18년, 나무판에 유채와 템페라,         75×56㎝, 부다페스트 미술관 소장.

 

 

신께서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죄 많은 인간들을 향해 화살 세 발을 겨눈다. 화살 셋은 흑사병, 기아, 전쟁을 뜻한다. 전염병이 창궐해 생산이 멈추고, 굶주린 이들이 분노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죄인들은 화살을 피해 성모 마리아께 달려갔다. 차림새를 보니 고관대작 아니면 성직자다. 성모는 이들을 모두 끌어안았고, 예수 그리스도는 가시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 위에 무릎을 꿇었다. 과연 화살은 시위를 떠날 것인가.

푸르스름한 먼 곳의 산세와 짙푸른 초목의 치밀한 묘사가 묘한 대조를 이룬 이 그림은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 대(大)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 the Elder·1472~1553)의 비텐베르크 공방에서 제작됐다. 작센 선제후의 왕실 화가이자 출판업과 약재상을 독점한 탁월한 사업가였던 크라나흐는 대규모 회화 공방을 운영했다. 훗날 공방을 이어받은 두 아들이 각각 1513년, 1515년에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어린 자식들이 무사하길 바랐던 아비의 마음이 이 그림에 담겼을 것이다.

성모께서 인간을 비호하는 그림은 전형적인 가톨릭 성화의 주제다. 그러나 사실 크라나흐는 바로 이 그림을 그릴 무렵인 1517년 비텐베르크 교회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와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그는 루터의 초상화를 수없이 그렸고, 루터가 번역한 성경의 삽화와 출판을 도맡았으며, 도주 중이던 루터를 옹호했다. 그러면서도 가톨릭 성화를 그리고, 신·구교 지지자들로부터 모두 초상화 주문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교나 다름없는 고대 신화 또한 즐겨 그렸으니, 그는 진정 탁월한 경영과 처세의 능력을 갖췄던 게 틀림없다. 어쩌면 많은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자 사업주라 가능했던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