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9 06: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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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개관 10주년
이인성·이쾌대
두 천재의 작품 전시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관 10주년 기념 ‘대구근대미술전-때와 땅’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이인성의 ‘경주의 산곡에서’를 감상하고 있다. / 대구미술관 제공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5년간 한국에는 대구가 낳은 2명의 천재화가가 있었다.
38살에 요절한 이인성(1912~1950)과, 남북포로교환 당시 북한을 선택해 북으로 간 이쾌대(1913~1965)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비운의 천재 화가’라고 부른다.
한 사람은 가난한 천재요, 또 한 사람은 수 만석 지기 부잣집 출신의 천재였다.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화풍도 달랐지만 나라를 잃은 엄혹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비극적인 삶으로 마감했고, 또한 한국 미술사에 굵은 족적을 남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대구 수창보통학교(현 수창초등학교)를 같이 다니기도 했던 두 사람의 천재를 낳은 대구는 바로 근대 서양미술이 싹을 틔우고 그 싹을 활짝 피워낸 곳이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피렌체에 버금간다고 할까.
◇대구 서양미술의 태동과 도약
대구미술의 저력을 보여주면서도 미술사적으로 우리 미술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갈 전시가 대구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월9일부터 5월30일까지 개관 10주년 기념전으로 열리고 있는 ‘대구근대미술전-때와 땅’이다.
이 전시에서는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 중 하나로 어느 지역보다 근대 예술과 문화유산이 풍부한 대구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여준다. 전시를 보고나면 “대구 근대미술이 한국 근대미술이구나”하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많은 이들은 말하고 있다.
◇대구의 풍성한 미술 자양분
전시는 크게 총 5개 부문으로 나뉘어진다.
첫번째 전시실은 대구의 전통 서화가 미술로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술과 함께, 사회와 함께’다. 대구의 근대미술은 시인 이상화의 형이자 독립운동가이면서 시서화에 큰 족적을 남긴 이상정이 서양 화구(畵具)를 들여오면서라고 알려져 있다.
이 전시실에서는 이상정이 1925년경 중국으로 망명한 후 전각에 심취해 제작한 여러 전각 작품을 편집한 ‘인보집’ 2종을 소개한다. 또 탁월한 문장력을 보여주는 그의 문학적 소양과 미술에 대한 이상을 담은 글도 소개한다.
서화가인 죽농 서동균과 요즘 표현으로 콜라버레이션으로 제작한 이인성·서동균의 합작도가 눈에 띈다. 이인성의 전통 묵화도 선보인다.
두번째 전시실은 ‘대구 근대의 색’이라고 붙여져 있다. 서영 화구 도입 후 대구 최초의 양화전문 단체인 향토회의 활동을 살펴보는 여러 작품들이 나와 있다.
◇두 천재가 만났다
세번째 전시실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대구 근대의 색’이라 이름 붙여진 이 전시실은 오로지 이인성과 이쾌대 두 천재의 작품만으로 구성돼 있다. 들어서면 작품에만 조명이 비추어져 있어 범상치 않음을 직감하게 한다.
작품 수는 12점. 수작들로만 골랐다. 두 천재의 작품이 이번처럼 한꺼번에 외출한 것은 처음이다.
이인성의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의 작품 ‘가을 어느날’과 ‘경주의 산곡에서’는 삼성리움미술관이 빌려준 것이다. 두 작품이 동시에 선보이는 것 역시 최초다. ‘가을 어느 날’에서는 파란 가을 하늘 아래에 적갈색으로 한국적 체형의 벌거벗은 여인과 향토색 짙은 붉은색을 펼쳐 놓았다.
‘경주의 산곡에서’는 그의 나이 불과 24세 때 작품. 조선미술전람회 최고상을 수상했다. 이 역시 붉은색 땅, 깨진 기와장, 멀리 보이는 첨성대 등 한국적 서정을 녹였다. 두 작품에서는 일본에 유학한 이인성이 고갱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표현과 감성으로 작품을 제작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월간미술’이 선정한 ‘한국근대미술 100선’에 1등을 차지한 수작 중의 수작이다.
마주보는 이쾌대의 작품 역시 천재성이 번득인다. ‘군상1’에서는 해방을 맞은 감격의 순간들이 표현돼 있다. 들라크루와의 낭만주의적 영향이 눈에 띈다.
반면 ‘자화상’에서는 고전주의적 화풍이 짙게 배어 있다. 어느 평론가는 ‘자화상’을 한국 근대미술의 ‘최고봉’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이쾌대의 작품은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사실주의의 화풍이 혼재돼 있어 대구 미술의 출발과 정신, 근대성을 집약해 놓았다. 그밖에 이인성의 ‘붉은 배경의 자화상’, ‘계산동 성당’, ‘사과나무’, ‘침실의 소녀’와 이쾌대의 ‘군상2’, ‘걸인’, ‘카드놀이 하는 부부’, ‘부인도’ 등 하나같이 보물처럼 반짝이는 작품들이 관람객들을 설레게 한다.
‘회화 전문(專門)에 들다’라는 제목의 네번째 전시실은 근대미술이 성장하게된 요인으로 사제관계와 교육의 영향을 다룬다. 일본인 교사와 일본 미술의 영향, 전문교육을 받고 성장하는 미술인들을 소개한다.
마지막 다섯번째 전시실은 ‘피난지 대구의 예술’이다. 해방과 6·25전쟁의 혼란속에서도 지켜온 예술혼을 살펴보는 작품들로 꾸몄다. 피난지 대구에서 전쟁의 고통을 참아내면서 예술의 혼을 지핀 이들의 행적을 찾아보는 순간이다.
최은주 관장은 “한국 근대미술의 발상지로서 대구가 지닌 문화적 자양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전시로 사회를 생각하는 대구근대미술의 정신을 느낄 수 있고, 대구 시민들이 대구예술에 큰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대구에 선보이기 힘든 이인성과 이쾌대의 최고 걸작을 한자리에 모아 시민들과 관람객에 큰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풍성한 아카이브는 보너스
이번 전시에서는 또 하나 풍성한 아카이브(역사적 가치 혹은 장기 보존의 가치를 지닌 기록이나 문서들의 수집 또는 이러한 기록이나 문서들을 보관하는 장소·시설·기관 등을 의미함)를 볼 수 있다. 석재 서병오, 죽농 서동균, 이인성 등의 화가와 교류한 이상화, 현진건, 윤복진 등 근대 화가와 예술가들이 어떻게 교류했나를 여러 저서와 자료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들 예술가들이 서로 어떻게 교류하고 지냈느냐를 보고나면 하나의 커다란 근대역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개관 10주년,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다
대구미술관은 올해로 개관10년을 맞았다. 개관 이후 10년 동안 106회라는 엄청난 전시회를 소화했다. 작년말까지 소장품도 1543점이나 보유하게 됐다.
개관 10주년 기획의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는 ‘대구포럼’이다.
지속적인 학예연구를 바탕으로 연례적으로 진행하게 된다. 지역 미술의 다변화와 세계화를 촉진하려는 뜻에서 매년 세계 수준의 전시를 관람객들에게 선보인다.
우선 6월15일부터 10월3일까지 여는 ‘시를 위한 놀이터’가 서막을 여는 전시다.
10월에는 세계 최고의 미술재단으로 손꼽히는 매그재단(Foundation Maeght)과 함께 ‘다이얼로그: 대구미술관 & 매그재단 미술관’을 연다.
여기서는 ‘인간성 회복’과 ‘미술의 본질적 물음’을 주제로 두 기관의 소장품이 마치 문답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자코메티, 샤갈, 미로 등 전후 유럽 미술의 정수와 곽훈, 이강소, 이명미, 정점식 등 대구미술관의 주요 소장품들이 10월19일부터 내년 3월27일까지 관람객들을 맞는다.
그밖에 대구의 전도유망한 중견작가와 원로작가를 조명하는 전시인 정은주, 차규선, 차계남 작가의 개인전도 진행되고 있거나 진행될 예정이다.
젊은 작가 발굴·육성·지원 프로그램인 ‘Y아티스트 프로젝트’, 제21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 강요배'의 개인전, 어린이 교육전시 ‘악동 뮤지엄’, 인문학 미술사 강좌' 등 다양한 전시·이벤트들이 이어진다.
대구미술관은 코로나의 와중에도 항상 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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