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구본웅·배운성 유화, 보존 처리 중 숨겨진 도상 발견…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
자세히 봐야 보인다.
화가 오지호(1905~1982)가 그린 유화 '풍경'(1927)은 제목처럼 나무 몇 그루 서 있는 야외 풍경이지만, 보존 처리를 위해 표면에 엑스선을 쪼이자 숨어있던 도상(圖像)이 드러났다. 물감 퇴적층 하부에서 가로로 길게 누워 있는 웬 나체 여인이 발견된 것이다. 화가 구본웅(1906~1953)의 '여인'(1940)은 재빠른 붓 터치로 그려낸 인물화지만, 이 역시 엑스선 촬영 결과 그림 심층에서 굽이치는 길과 언덕 위 기와집 지붕이 드러났다. 두 연구를 진행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투과력이 강한 엑스선을 통해 두 화가가 이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캔버스를 활용해 그렸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두 그림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전시 '보존과학자 C의 하루'에서 10월 4일까지 공개된다.
미술품에 대한 보존 및 과학 처리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지만, 켜켜이 쌓인 시간을 들춰 과거의 발굴을 돕는 작업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미지를 복구해 미지의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숨은그림찾기'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해에는 영국 내셔널갤러리 연구진이 그림 안쪽의 물감 성분 등을 분석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암굴의 성모'의 심층에서 천사와 아기 예수의 밑그림을 발견하기도 했다.
수정 흔적은 고심의 증거다. 유럽 진출 1호 화가 배운성(1900~1978)의 초기작에서도 최근 흥미로운 도상의 변화가 발견됐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진이 2018년부터 진행한 유화 12점의 근적외선 영역 초분광 분석 결과다. 이를테면 '모자를 쓴 자화상'에서 화가가 들고 있는 물잔은 원래 샴페인 잔처럼 날렵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밋밋한 기둥 형태로 바뀌었다. 실험을 진행한 이한형 연구교수는 "화가가 평소 그림을 들고다니면서까지 붓질을 거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고친 것 같다"고 했다. 통통한 아기 옆얼굴을 그린 '애기 초상'의 초기 형태는 아기의 정면이었고, '두 여인과 아이' 속 깡마른 강아지는 시추로 추정되는 종(種)으로 변화했다. 작품 소장자인 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은 "이러한 재미가 작가와 그림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애기 초상'과 '두 여인과 아이'는 서울 홍지동 웅갤러리·본화랑에서 29일까지 열리는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통대 측은 최근 김형구(1922~2015)가 그린 '혜화동 풍경'(1961)에서도 감자로 추정되는 정물화 밑그림을 찾아냈다. 연구진은 "근현대 회화의 분석 기법을 개발해 사업화할 계획"이라며 "향후 위작(僞作) 시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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