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박물관 '新왕실도자' 특별전
1888년 5월 콜랭 드 플랑시 프랑스 공사가 고종에게 도자기 세 점을 바쳤다. 붉은색 비단으로 싸인 도자기는 모두 '세브르 자기'. 사디 카르노 대통령이 2년 전 체결한 조불수호조약을 기념해 보낸 선물이었다. 예술적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는 병인양요로 굳어진 침략국가 이미지를 상쇄하기 위해 자국의 명품 도자기를 보내 조선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프랑스 대통령이 고종에게 선물한 세브르 자기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이 132년 만에 공개됐다. 높이 62㎝, 입지름 53㎝. 오렌지 빛 바탕에 화사한 꽃무늬가 그려진 대형 꽃병이다.
조선과 프랑스 수교의 상징인 이 도자기가 132년 만에 공개됐다. 높이 62㎝, 입지름 53㎝의 '백자 채색 살라미나 병'. 국립고궁박물관에서 29일 개막한 '신(新)왕실도자, 조선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 특별전에서다. 오렌지빛 바탕에 화사한 꽃무늬가 그려진 이 대형 꽃병을 비롯해 프랑스·영국·독일·일본·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 등 총 400여점을 소개한다.
고종은 그해 10월 답례로 비색 청자 대접 두 점과 왕실 공예품인 반화(盤花) 한 쌍을 보냈다. 반화는 놋쇠 받침 위에 각종 보석류로 나무와 꽃을 만들어 꽂은 조화 장식품이다. 곽희원 학예연구사는 "반화는 현재 파리 기메박물관에, 청자 대접은 국립세브르박물관에 있다"며 "코로나 때문에 오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프랑스가 살라미나 병과 함께 선물한 나머지 두 점은 일본에 있다. 곽 연구사는 "분실된 줄 알았던 '클로디옹 병' 2점을 영친왕이 거주했던 도쿄 아카사카 저택 사진 속에서 발견했다. 영친왕 저택이 세이부그룹에 매각되면서 지금은 프린스호텔 레스토랑 입구에 놓여 있다"고 했다.
전시는 근대 전환기 조선 왕실이 처했던 과도기적 상황을 도자기를 통해 들여다본다. 1887년 전기 도입 후 궁궐을 밝힌 형형색색의 유리 전등갓, 오얏꽃 문양이 찍힌 프랑스 필리뷔트 식기 세트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창덕궁에 남아 있는 서양식 주방을 그대로 본떠 전시장에 구현했고, 서양식 연회를 영상과 함께 재현해 현장감을 살렸다. 일본과 중국에서 수입한 대형 꽃병들은 호화로움의 극치. 조선 왕실은 일본 아리타·교토·나고야에서 만든 서양 수출용 도자기를 수입해 궁궐의 실내 공간을 장식했다.
박물관은 "부국강병을 꿈꿨던 고종의 소망은 빛이 바랬지만, 서양식 건축물을 짓고 세계적으로 유행한 대형 화병으로 궁궐을 장식한 건 근대적 취향과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하나였다"고 설명한다. 화려한 전시장, 격변의 최전선에서 외교적 해법을 찾으려 했던 왕실의 흔적을 보면서 가슴 한편이 쓸쓸해진다. 10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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