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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백자청화시문필통 白磁靑畵詩文筆筒 - 10.7☓15.4(h)cm - JoSeon Period

by 주해 2022. 11. 17.

2019-02-28 15:44:45

 

 

 

금사리가마에서 제작된 백자청화시문필통이다. 상대적으로 큰 키를 갖췄으며 입술은 직각으로 다듬은 편으로, 몸통이 기울거나 주저앉은 구석이 없어 당당한 모양새를 자랑한다. 전반적으로 투명한 백자유를 시유했고 고르게 녹아 유광이 좋은 편이다. 입술과 굽에 일부 수리가 존재하지만 18세기에 제작된 필통의 전하는 수량이 많지 않음에 그 희소성과 문양, 발색으로 하여금 존재감을 보이는 귀한 필통이다.

필통의 몸통에는 사면에 걸쳐 청화로 시구가 적혀있다. 숙종 때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농암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시인데, 18세기 백자기에 명문이 적힌 예도 드물었지만 중국이 아닌 조선 문인의 것을 시문한 다는 것은 당시로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부분적으로 번조 중 안료의 떨림으로 인해 글자가 흐릿한 곳도 있지만 판독이 가능한 편이고 시문한 청화의 발색 또한 맑다. 도자기에 시문을 적어 감상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이뤄졌으며, 청화 안료가 귀했던 조선전기 즉 15세기에도 청화로 시를 쓴 청화백자 접시가 만들어졌으니 도자기 시문은 꽤나 오랜 감상요소였다고 할 수 있겠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청화 백자에 시구가 적히기 시작하는 것은 19세기 들어서부터인데 이때에 적힌 시구는 대개 당나라나 송나라의 이름난 시인들의 것이었다.

 

匣而不用 넣어 두고 사용하지 않으면

死毫枯竹 죽은 털에 바싹 마른 대나무 자루일 뿐

一涉紙墨而是非千百 그러나 지묵이 한번 어우러지면 천백 가지 시비를 빚어내거니

嗚呼與其動而有失 아, 움직여서 잘못이 있기보다는

無寧深藏乎爾室 네 집에 깊이 숨어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한국고전번역원 『농암집』 인용

 

농암이 어떤 연유로 시를 지었는가는 그의 문집 『농암집』에 소상히 나와 있다. 당시 도공들에게 직접 제작을  명하고 그에 맞는 명문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품목은 밥그릇, 술 단지, 세수 대야, 등잔, 필통, 연적 등 여섯 가지로 알려져 있으며, 출품작의 명문은 이때 지은 필통에 대한 시구가 맞지만 『농암집』에 실린 원문와 달리 글자 몇개가 빠져 있다.

己卯夏。爲燔先誌。往廣州窯所間。命工人作數種器皿。因各爲之銘。以寓古人儆戒之意。

기묘년1699, 숙종25 여름 선고先考, 김수항1629-1689 묘지명의 지석誌石을 굽기 위해 광주 요소窯所에 갔다. 작업을 진행하는 틈틈이 도공에게 명하여 몇 종의 기명器皿을 만들게 하고 기명마다 명문銘文을 지어 옛사람이 기물을 통해 경계하였던 뜻을 부쳤다.–김창협, 농암집 中

자기에 청화로 글을 쓴 인물이 김창협 본인인가에 대한 것은 명확하지 않다. 초벌된 백자는 표면이 말라 있어 붓의 속도가 빨라야 하고, 굴곡진 표면의 붓을 다룸에 있어 숙련을 요하는데 농암이 그러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일부 글자가 탈락되어 있고 농암의 생몰년과 자기 제작연간의 차이가 있어 농암이 직접 썼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농암의 명문이 후에 시문된 백자문방구가 몇몇 전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그의 글이 시문된 도자 수요로 인해 지속적으로 일부 생산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匣而不用 넣어 두고 사용하지 않으면

死毫枯竹 죽은 털에 바싹 마른 대나무 자루일 뿐

一涉紙墨而是非千百 그러나 지묵이 한번 어우러지면 천백 가지 시비를 빚어내거니

嗚呼與其動而有失 아, 움직여서 잘못이 있기보다는

無寧深藏乎爾室 네 집에 깊이 숨어있는 게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