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2 00:09:58
LITERATURE
『김환기 <1950-1959>』(갤러리현대 두가헌, 2009), pl.11.『연리지, 꽃이 피다 - 장욱진, 김종영, 김환기』(김종영미술관, 2010), p.63.『Kim WhanKi 김환기』(마로니에북스, 2012), p.41.『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국립현대미술관, 2021), p.363.
EXHIBITED
갤러리현대 두가헌(서울), 《김환기 <1950-1959>》: 2009.9.9-27.국립현대미술관(서울),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2021.2.4-5.30.
작품설명
1956년 김환기는 동화 화랑에서 열린 도불 기념 개인전에서 <학>, <여인과 항아리> 등 25점의 작품을 선보인 후 그 해 4월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김환기는 당시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에 정착하며 유럽 미술계의 문을 두드렸고 곧이어 베네지트 화랑에서 개인전을 펼쳤다. 이후 1959년 4월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1950년대 후반의 파리 시기는 당시 추상회화의 주된 흐름 속에서도 한국적 소재와 심상을 활용한 김환기의 독창적 예술세계가 펼쳐진 시기였다.김환기에게 순백의 조선백자는 그저 흰색을 발현하는 도자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때로는 싸늘한 도자지만 그 안에는 온기가 담겨있는 대상이었다. 단순하면서도 회백색, 청백색, 난백색, 유백색 등 복합적인 색이 내재된 조선시기 백자는 작가에게 회화로 옮겨내고 싶은 사물이자 우리 민족의 특징이 내재된 전통적 기물로 여겨졌다. 이미 도불전부터 수많은 백자를 수집했고 미美에 대한 관념을 백자로부터 사유하며 얻었다. 1963년 후반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경험하고 뉴욕에 정착하기 전까지 그의 작품의 주된 도상은 ‘산, 달, 새, 매화’와 같은 자연물과 백자였다. 이러한 대상과 소재는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서도 모두가 제각기 그 형태가 현실에서 바라본 원형의 것과 다르게 표현됐다. 도자기들은 얼핏 보기에 비슷한 형태의 유사한 형상 같아 보이겠지만, 하나의 항아리만 보더라도 마치 자연이 만들어낸 것과 같이 그 선과 형태가 각기 다르다. 이러한m자연스러운 도자의 형태는 김환기 회화 속 백자에서도 고스란히 표현된다.출품작에는 제기 형태의 백자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붕의 처마와 같이 끝이 올라간 자연스러운 형태가 돋보인다. 김환기는 회화 속 소재들을 백자와 같이 단순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조형적 특징을 잘 포착해 나타냈다. 화면 상단의 커다랗고 둥근 달은 마치 백자 달 항아리의 유연한 곡선의 형상과도 유사하다. 그 형태의 윤곽선이 표면의 색과 달리 조금 더 밝게 칠해 그 형태가 눈에 들오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더불어 화면 중앙부의 백자의 은은하고 밝은 흰색이 마치 달에 의해 밝혀진 듯한 은유적 구도로 배치한 부분 역시 인상적이다. 김환기는 어두운 밤하늘에 밝은 달이 떴을 때 그 빛을 흡수한 백자를 바라보며 사람의 체온이 담긴 것 같은 백자의 매력에 심취되기도 했다. 도자 위에는 화면 상단부 둥근 달의 형태와도 유사한 노란 빛을 띤 원형의 형상을 그려 넣어, 마치 제기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과실과도 같이 표현됐다.매화는 화면의 가장 앞에 등장하는데, 1950년대 중, 후반부에 나타나는 김환기의 자연물은 주로 검은 윤곽선으로 그 형태가 표현됐다. 특히 산월의 형상을 그리거나 자연에서 볼 수 있는 매화나 새를 그릴 때도 원근법이 배제된 평면적인 배경을 뒤로하고 그 대상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표현한 선묘적 특징이 돋보인다. 김환기는 시각적으로 바라본 그대로의 대상을 재현하는 환원주의적 태도는 아니었으며, 마음속에 내재하며 자리한 자연물을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 형태와 표현이 마치 백자의 자연스러운 윤곽의 형태처럼 작가의 심상에 떠오른 자유로운 형태적 표현이 가능했다. 출품작의 매화 역시 위, 아래를 가로질러 과감하게 그려진 검은 선으로 표현됐으며, 길게 뻗은 선과 동그랗게 그려진 매화의 형태가 기하학적 조형을 띄고 있다. 이러한 기하학적 선은 김환기 특유의 푸른 색감의 바탕 화면 속에서도 드러나는데, 색면 분할된 직사각형의 형태 구조를 만들어 선을 활용한 화면 공간의 경계로 구성했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화면 구조와 어우러지는 사각형 선의 표현은 자연물과, 사물의 자연스러운 선형적 표현미 속에서도 푸른 색면의 평면성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이와 같은 표현법은 1950년대 후반 극단적 추상의 길로 따라가기보다, 전통 소재와 사물, 그리고 한국적 자연물을 활용한 구상과 추상 양식의 조화를 통해 완성됐다. 출품작 역시 푸른 배경과 전통의 소재가 한 화폭에서 원근감 없이 평면화된 구조로, 대상과 배경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작품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