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8 15:22:27
김홍도는 그 생김이 빼어나게 맑으며 훤칠하니, 키가 커서 과연 속세의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이와 같은 고로 그림 역시 그와 같다.– 홍신유洪愼猷, 금강산시金剛山詩쉬이 잠들지 못한 한 선비가 그믐달이 높이 떠오른 깊은 밤 산책에 나섰다. 끝없는 밤길을 따라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을 천천히 비워내고 있을 테다. 뒷짐을 진 채 오로지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소요逍遙하는 이 공간과 밤길을 내려다보는 선비의 담담한 표정이 작품의 정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화면을 압도하며 중앙에 크게 자리한 매화는 매화꽃을 단촐하게 표현했지만 분명 선비의 눈 앞에는반짝이는 하얀 꽃이었을 터, 그 옆으로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까지 곁들여진 그윽한 봄날 밤의 정경이다.
굽이치는 매화의 강렬한 형상에서는 단원 특유의 맑고 깔끔한 수지법樹枝法이 눈에 띈다. 특히 급격한곡선을 이루는 둥치와 왼쪽으로 휘어지는 줄기 부분은 유난히 짙고 굵은 필획으로 강조해 노매의 힘있는 형상을 탄탄하게 받쳐주며, 구불거리는 필획과 가로로 쳐낸 태점, 자유스런 해조묘蟹爪描 등은 단원의 경쾌한 붓질을 상상케 한다.
이러한 나무의 형태는 배경을 생략한채 그린 1804년 단원의 노년작인 <노매도老梅圖>개인 소장, <노매함춘老梅含春>개인 소장과도 비교해 봄직하다.작품 속 매화는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친 곳에서 솟아 화면 상단에서 급격히 왼쪽으로 휘어지는 구성이다.그 줄기를 따라 가면 오른편 아래에 있는 선비와 왼편 상단의 그믐달로 시선을 자연스레 유도하는데,이는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단원의 영리한 화면 구성법인 셈이다.
선비는 힘을 뺀필치로 먹의 강약을 조절해 적절한 비례감과 의습선을 그려냈고,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몇 개의필획으로만 묘사해 함축적이다. 굽이치는 나무 끝에 걸린 그믐달 역시 2-3번의 붓질로 그 형상을은근하게 드러냈으며, 그 주변으로는 물기 많은 담채를 너르게 문지른 흔적이 보인다.화면 왼편으로 길게 뻗은 풍죽의 댓잎은 짧고 리듬감 있는 필획으로 쳐냈고 가느다란 세죽의 마디표현에서도 빠른 속도감이 느껴진다.
농묵의 대나무는 매화와 함께 화면 전반에 펼친 단아한 담채와자연스런 대비를 보이며 깊이감을 형성할 뿐 아니라, 가벼운 붓터치로 인해 정적인 분위기의 화면에생기를 불어넣어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출품작은 소폭의 화면에서도 인물, 매화, 대나무 등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단원의 묘사력을 간취 할 수 있으며, 상태 또한 온전하다.
한 때 화첩에 속해 있었던 듯 반으로 접힌 화면 오른편 하단에는 단원의 서명과 사능士能이라는 도장이 또렷한데, 특히 사능이라는 도장은 단원의 말년작이라 여겨지는간송미술관 소장 <춘한맥맥春恨眿眿>에도 찾아볼 수 있어 출품작 역시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추정해 볼 수 있겠다.
참고도판단원 김홍도, 노매도, 1804,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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