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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한국 고미술

안중근(1879~1910) - 승피백운지우제향의(乘彼白雲至于帝鄕矣) - 34.0☓137.7cm -1910.3

by 주해 2022. 11. 16.

2018-12-09 17:05:10

 

 

출품작은 독립운동가로서 이름을 떨친 안중근安重根, 1879-1910 의사義士의 유묵이다. 활달하고탄력적인 필치는 사형을 앞둔 자의 필획이라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강인한 기백이 서려 있다.화면 왼쪽에는 “1910년 3월庚戌三月 뤼순옥중에서於旅順獄中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씀安重根書”이라 적고, 아래에는 수장인手掌印을 힘있게 찍었다.

약지가 짧은 그의 왼손바닥은 1909년 2월 7일 김기룡, 백규삼 등 12명의 동지들과 단지해 결의한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 일명 단지동맹斷指同盟의 흔적이다. 온전한 오른손 대신 왼손을 압인한 것은 애국지사로서의 꼿꼿한 항일 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여겨진다.안중근은 사형을 선고 받은 1910년 2월 14일부터 처형되기 직전인 3월 26일까지 뤼순감옥에서 200여점 정도의 유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국내외에서 확인되는 작품은 62점뿐이고 그 중 26점이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독립운동사와 안중근 개인사 자료로서 중요성을 높게 평가 받고 있다.

대부분 일본인 간수나 검찰관 등의 요청으로 써주었다고 전하며, 같은 시기에 자서전인 『안응칠역사』와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담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음을 감안하면,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양의 글을 쏟아냈다고 할 수 있겠다.지금까지 알려진 안중근의 유묵은 자작시, 누군가의 당호, 또는 『논어論語』, 『맹자孟子』 등의글귀를 쓴 것이었으나, 이 작품은 『장자張子』의 구절을 인용한 점이 눈에 띈다. 유묵의 ‘乘彼白雲至于帝鄕’은 ‘흰 구름 타고 하늘나라에하늘님 계신 곳에 이르리’라는 뜻으로, 『장자』 외편천지天地편의 구절이다. 유년시절 사숙私塾에서 『천자문千字文』·『맹자』·『통감通鑑』 등 중국 고전을 익혔다던 그의 탐독에 토대한 것인 셈이다.안중근이 인용한 천지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국의 요堯임금이 화華라는 지역을 방문하던 중 그를 만난 국경지기가 부와 자손, 장수를 기원하자, 요임금은 걱정과 욕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사양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국경지기가 말하길, 때가 되면 홀연히 흰 구름을 타고 하늘나라로 떠나면 될 터乘彼白雲至于帝鄕 진정한 성인에겐 근심과 화가 미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이 내용은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말에 따라 사형선고에 항소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인 안중근의 초연함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겠다.

죽음에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유묵들이 많이 전하지 않는 가운데, 초탈한 안중근의 심리를 직간접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 보인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총살함으로써 대한독립의 신호탄을 터트린 안중근은 이 세상에 걱정과 미련 없이 ‘흰구름 타고 하늘나라에 이르’는 진정한 성인의 모습을 실천하고자 했고, 나아가 천주교인으로서의 천명을 따르고자 했던 결연함이 작품에 묻어난다. 뤼순 관동도독부 고등법원 검찰관 미조부치 타카오溝淵孝雄와의 심문에서 “일본이 비록 백만 명의 군사를 가졌고 또 천만문의 대포를 갖추었다 해도, 나 안응칠안중근의 목숨 하나 죽이는 권세밖에 또 무슨 권세가있을 것이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 죽음을 맞이하면 그만이요, 또 무슨 걱정이있을 것이냐. 나는 더 이상 대답할 것이 없으니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라고 했던 안중근의발언은 이 유묵의 의미를 깊게 되새겨보게 한다.서여기인書如其人. ‘글씨가 곧 그 사람이다.’라는 말은 안중근의 글씨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그의 혼백은 아직 한국 땅으로 돌아오지 못했으나 그의 투철한 독립의지가 실린 유묵은 우리의 곁에서 생생히 살아 이 곳에 있다.